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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인권 상징 ‘낙태권’ 50년 만에 폐기되나

이슈 분석 : 텍사스 발 낙태권 찬반 논란

임신 6주 께부터 낙태 금지 ‘태아심장박동법’ 발효 파장
다른 주도 모방법 제정 예상…내년 연방대법 판결 주목


미국이 48년 만에 낙태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텍사스주에서 일명 ‘태아 심장박동법(fetal heartbeat bill)’이 시행되면서 그 파장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어서다. 미국에서 낙태권 찬성과 반대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여성의 권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이슈다. 관련 소식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심장박동법이란= 텍사스에서는 그동안 임신 20주부터 낙태를 금지해왔다. 그런데 9월 1일부터 시행된 심장박동법은 이 낙태 금지 시기를 태아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기로 앞당기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통상 임신 6주가 되면 심장박동이 감지되는데 임신 초기라서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모를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시기를 낙태 금지 시점으로 설정해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가장 엄격하다니 뭐가 다른가= 이 법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따른 원하지 않는 임신의 경우조차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학적 응급상황을 빼고는 낙태를 완전히 금지한 법이다. 지금까지 나온 타주의 낙태금지법과 가장 다른 점은 이 법을 주 정부가 단속하지 않는 대신 법을 어긴 사실을 인지한 시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주 정부는 불법 낙태 시술병원 등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거는 시민에게 최소 1만 달러를 지급하기로까지 했다. 여성 인권 단체들은 “심장박동법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 시민에게 소송을 허용하도록 한 것”이라며 “일종의 자경단 시스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왜 악랄하다는 것인가= 과거 불법 낙태 단속 권한은 정부 당국에 있었고, 따라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가능했다. 그런데 텍사스 주법은 주 정부가 낙태 단속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일반인이 문제를 제기하도록 규정하는 바람에 낙태 옹호론자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낙태 옹호단체들은 가만히 있었나?
텍사스주의 심장박동법을 막아달라고 낙태권 옹호단체들이 가처분신청을 냈었지만 지난 1일 연방대법원이 이를 5:4로 기각함에 따라 법이 시행된 것이다.

▶텍사스주 법인데 왜 전국적 이슈가 되고 있나=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관심이 쏠린 이유는 여성의 낙태권을 계속 허용할지를 놓고 대법원의 본안 심리가 예정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3~24주 이전에는 낙태를 할 수가 있다.

이는 법이 아니라 1973년 1월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로 불리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립된 여성의 권리다. 그 후 50년 가까이 낙태를 허용해온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이번 텍사스 심장박동법 시행으로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란=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이었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을 사생활에 대한 기본권의 일종으로 인정하면서 낙태를 최초로 합법화한 판결이다. 여기서 로(Roe)는 소송 당사자고 웨이드는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의 이름이다. 로는 소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제인 도(Jane Doe)’처럼 신원 보호를 위해 사용한 가명이며 실제 이름은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이었다.

▶어떤 사연으로 소송이 제기됐었나= 매코비는 1969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강간을 당해서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지만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또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수술을 거부당했다. 그러자 매코비는 1970년 새라 웨딩턴과 린다 커피라는 두 여성 변호사를 찾아가 텍사스 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1973년 1월 22일 대법원은 7대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모두 폐지됐다.

한편 이런 역사적인 판례를 이끌어낸 소송 제기자인 매코비는 이후에 아이러니하게도 낙태하려 했던 아이를 낳았고 수십 년 뒤에는 낙태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50년 가까이 유지된 이 판결이 왜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인가= 앞서 서술했듯이 텍사스주법과 별도로 대법원의 본안 심리가 예정된 상황이다.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로는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법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의 심리를 진행키로 한 상태다.

▶미시시피주 소송은 또 무엇인가= 미시시피주에 하나밖에 없는 낙태 시술소 측이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소송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것이다. 1심과 2심에서는 미시시피주의 낙태 제한 법률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었고 대법원 최종 판결은 내년 6월쯤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이 심리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현재 대법원의 보수 6명 대 진보 3명으로 구성된 대법관 정치 성향 때문이다. 특히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전 대법관의 별세 후 공석을 채운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자녀 중 한 명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고 출산한 사람으로 낙태 반대 의사를 본인이 직접 실천한 경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입장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일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 “터무니없고 거의 비미국적”이라며 “대법원 탓에 수백만 여성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은 백악관 젠더정책위원회와 법무부에 법적 대응 방안 검토를 지시한 상태다.

▶텍사스주 심장박동법이 타주에도 여파를 미칠까= 텍사스주의 새 법은 미국 전역에 걸쳐 낙태제한을 강화하려는 공화당의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최소 12개주에서 임신 초기부터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정했지만 모두 법원에 가로막혀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 취지대로라면 낙태 금지를 추진해온 다른 보수 성향 주들이 텍사스를 모방한 법을 만들 경우 시행까지 가능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CNN방송은 대법원이 내년 미시시피주 심리에 대해 판결을 내릴 시점에는 이미 일부 주들이 낙태를 효과적으로 금지하는 등 지형이 바뀌어 있을 수 있다며 이 경우 보수 대법관들이 굳이 기존 낙태권 판례를 뒤집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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