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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만에 다시 묻는다, 사랑과 결혼은 왜 다른가

거장 베리만의 73년 미니시리즈 ‘결혼의 풍경’
HBO 5부작 리메이크로 부활…12일 1부 상영

‘결혼의 풍경’의 리메이크 5부작 중 1편이 12일 오후 9시 HBO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아이작 오스카와 제시카 차스테인 출연. [HBO]

‘결혼의 풍경’의 리메이크 5부작 중 1편이 12일 오후 9시 HBO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아이작 오스카와 제시카 차스테인 출연. [HBO]

1973년 ‘결혼의 풍경’의 감독 잉마르 베리만(가운데)과 주연 배우들인 얼랜드조셉슨, 리브 울만.

1973년 ‘결혼의 풍경’의 감독 잉마르 베리만(가운데)과 주연 배우들인 얼랜드조셉슨, 리브 울만.

6부작 미니시리즈 ‘결혼의 풍경’은 TV 방영 이후 영화로 재편집되어 1973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유럽에 ‘이혼 붐’을 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6부작 미니시리즈 ‘결혼의 풍경’은 TV 방영 이후 영화로 재편집되어 1973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유럽에 ‘이혼 붐’을 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7년 타계한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이 1973년 연출한 미니시리즈 ‘결혼의 풍경’이 근 반세기 만에 현대판으로 각색되어 HBO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2015년 ‘가장 폭력적인 한 해(A Most Violent Year)’에서 함께 출연했던 연기파 배우 아이작 오스카와 제시카 차스테인이 리메이크에서 다시 호흡을 맞춘다.

인간과 하나님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던 ‘제 7인의 봉인’(1957), 두 여인의 관계를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했던 ‘페르소나’(1966) 등의 작품으로 3차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베리만은 ‘당대 최고의 감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출가’로 추앙을 받았다.

베리만 감독이 자신의 연인 리브 울만과의 관계를 토대로 ‘결혼의 풍경’을 구상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울만은 이 작품의 여주인공 메리앤으로 출연한다. 6부작 TV드라마 ‘결혼의 풍경’은 이후 영화로 재편집되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우디 앨런과 리처드 링클레이터(Before Midnight) 등 이후 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이 작품은 당시 유럽에 ‘이혼 붐’을 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HBO의 인기 드라마 ‘디 어페어(The Affair, 2014-2019)'를 제작, 연출했던 하가이 레비의 각색과 연출로 리메이크된 ‘결혼의 풍경’(5부작)은 대체로 베리만의 오리지널의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레비 감독은 관객(시청자)의 개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극을 전개해 나간다. 12년을 함께 지낸 한 커플의 결혼생활과 사랑에 관한 잡지사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오리지널의 오프닝은, 관객들이 객석을 메운 가운데 카메라가 돌아가는 TV세트 현장으로 바뀌어 있다.

70년대 유럽의 젊은 지식인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계약 결혼’이 그 시대의 키워드였다면 오늘날의 이슈는 젠더에 관한 다양한 다이내믹이다. 리메이크는 50년 전보다 확연히 달라진 젠더에 관한 시각을 가미했다.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르주아적 저항정신으로 청년기를 보낸 두 사람. 그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에 어울리게 계약과 합의 하에 결혼을 하는 두 남녀. 가정이라는 울타리,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의무, 약속, 결혼기념일 따위의 형식 안에서 관계에 관한 모든 감각이 무디어져 가는 즈음, 남자는 여자에게 계약의 끝을 선언한다.

10년 차 부부 요한과 메리앤의 이야기. 심리학 교수 요한과 가정법 변호사 메리앤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였다. 안정된 직업에 사랑스러운 두 딸도 잘 자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요한이 폴라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노라고 고백하며 다음 날 파리로 떠날 계획임을 통보한다. 솔직하지만 잔인하게.

결혼 생활이 삶의 전부였던 메리앤은 혼란에 빠진다. 외도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친구들이 자신에게만 그 사실을 숨겼다는 사실에 큰 배신감을 느낀다. 결혼이라는 타성에 젖어 인형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지난 삶을 뒤돌아본다. 그녀는 한동안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몇 주 전, 메리앤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요한에게 알렸다. 그러나 요한은 반기지 않았다. 잦은 말다툼 끝에 메리앤은 낙태 수술을 받았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불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부의 성생활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헤어진 후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메리앤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어느 날 요한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서먹하지만 둘은 다시 마주 앉는다. 요한은 폴라와 헤어질 거라고 얘기한다. 둘은 함께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실패한다. 요한이 떠나고 또다시 혼자 남겨진 메리앤.

결혼이라는 환상과 현실의 벽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숨겨야 했던 가슴 깊은 곳의 대화가 오간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과 결혼생활은 왜 달라야만 하는 것일까. 두 남녀는 결혼과 사랑의 함수관계에 대해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한다.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약속 안에서 기만과 외면을 보았고 갈등과 상처의 과정을 경험했다. 결혼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결혼이 주는 안정감에 기대어 살았다. 결혼과 사랑의 아이러니.

상대방에 대하여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다른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동안에도 결혼의 굴레 안으로 애써 들어가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시 서로에게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부부로 함께 했을 때보다 더 정열적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한 번도 누구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메리앤에게 요한이 답한다. 우리는 서로를 세속적이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사랑했을 뿐이라고. 영원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오직 너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랑… 그런 사랑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봐야 할 드라마. 결혼은 여전히 문제투성이이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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