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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애물단지

근 18여 년이나 몸담아 살던 플로리다 집이 지난 5월 초 팔렸을 때 나는 신나서 중얼거렸다. ‘야 잘됐다! 그러잖아도 지난해부터(2020년) 소리 없이 나타난 불청객인 팬데믹 때문에 근 일 년 넘게 플로리다에 머물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가….’ 이제는 아이들 있는 뉴저지에 올라갈 수 있게 됐으니 하며, 집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비워 달라는 새 주인의 요청으로 6월로 클로징을 정하고 나니 할 일이 태산 같았다. 그 당시 아이들이 내려올 수도 없는 형편이라(물론 큰일들은 아이들이 해 주었지만) 혼자서 뉴저지에 올라갈 짐 싸랴, 자선단체에 기부할 물건 정하랴, 각 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버릴 물건 정하랴, 근 한 달 여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면서 쌓아온 그곳에서의 정든 세월을 감지할 마음에 여유도 없었다.

요사이 정신이 좀 들어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일은, 형편상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아이들도 마다하고 해서 정들었든 몇 가지 물건들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때 ‘어이 미안하네, 다른 주인 만나 남은 세월 잘 지내시게’ 하며 ‘이 애물단지야… 잘 가시게!’ 하던 생각이 난다.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자신이 매우 소중히 아끼던 물건들을 처분할 때 ‘애물단지’란 말을 많이 썼다. 떠나보낸 사람은 자연히 잊지만 떠난 사람은 못 잊는다고 요즈음 그곳 생각이 솜털처럼 새록새록 피어난다. 맑은 공기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일주일이면 몇 번씩이나 골프 하는 것 외는 하는 일 없다고 늘 푸념하며 큰 도시에 문화생활을 부러워하고 변화 없는 매일의 생활이 삶을 지루하게 만든다고 내 나름대로 일을 찾아 바쁘게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이었기에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마음으로 늘 가까웠고 우리는 때때로 뒤뜰에서 기른 상추, 고추를 서로 주고받으며 정을 쌓곤 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많이 달라진 것은 보통 60대에 만난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80줄을 넘어 언덕길을 넘어가고 있기에 많은 분이 자식 옆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 생활은 나에게 삶의 많은 여백을 안겨주기도 했다. 동양화의 여백은 사유와 명상의 공간이라고 말하듯 여백은 마음의 힘찬 기상과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큰 도시생활에서 여름내 주워 담았던 삶을 설레게 하는 많은 정보와 재료들은 플로리다 나의 삶의 여백을 만들어 주었었다.

뉴저지에 들어서니 멀리 맨해튼이 눈부시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 이제야 정든 고향에 아주 정착한다고 하며 뒤를 돌아보니 플로리다의 정든 집이 손짓한다. 나는 20여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돌려놓고 나를 둘러본다. 다가오는 노년에 대한 포부와 희망으로 가슴은 지칠 줄 모르게 뛰었고 몸과 마음은 그것을 감당할 저력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보니 그동안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뀌어서 그런지 가까웠던 지인들도 많이 떠났고, 거동이 불편한 친구들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허나 도도히 흐르는 허드슨 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창밖으로 펼쳐 보이는 푸른 숲 사이로 우뚝우뚝 서 있는 건물들은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며 속삭인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시간만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흐르는 것뿐이야…’ 나는 또 한 번 말년에 대한 희망과 꿈을 꾼다!


정순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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