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화 화백, 자택에 갤러리 오픈
매일매일 그림사랑 열정 나누고 싶어
박정희 정권 당시 장학금으로 이탈리아로 그림 유학을 오기는 했지만,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다. 받은 1년치 장학금은 8-9개월이면 동이 났다. 유화 물감의 값은 비쌌고, 너무 아껴쓰면 그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4개월간의 방학 동안 그녀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알프스산 기슭에 위치한 파도바(Padova) 인근 작은 마을의 성당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 4시면 딸랑딸랑 소 젖 짜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작은 마을에서 수녀님들과 아침마다 동네를 돌면서 가가호호 방문을 해서 아기들을 직접 데려와서 밥을 줘가며 돌보고, 오후 5시면 다시 아기들을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아름다운 알프스산 기슭의 그 작은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양귀비꽃, 보랏빛 아이리스 등은 그녀에 의해 고스란히 화폭으로 옮겨졌다. 강 화백은 그림을 그릴 때 머릿속에 끊임없이 분출해 나오는 영감을 화폭에 담는다. 그래서 세밀하게 작은 붓으로 오밀조밀 그리는 것보다 굵은 붓을 이용해 힘차게 선을 그린다. 그렇게 열정을 쏟아가며 작품 하나를 마치는 식이다 보니 그림을 그리다 보면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래서 투병 생활을 하면서 기력도 많이 쇠해지고 힘이 들어서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화실 운영도 접었다. 그렇다고 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어서 투병 생활 중에도 틈틈이 기력이 허락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가 포함된 큰 화폭의 그림, 끊임없는 날갯짓으로 목적지까지의 힘든 여정을 이어가는 기러기들의 모습을 보고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는 <집으로> 라는 이름의 작품, 학창시절 가을이면 은빛으로 들판을 물들이던 갈대밭을 추억하며 그려낸 <잃어버린 시간 속의 들판> , 복사꽃이 흐드러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에 오빠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첨벙거리고, 간혹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 말 그대로 <고향의 봄> 가사가 연상되었던 어린 시절 그녀의 기억 속의 외할머니집 등 그녀가 열심히 설명하는 작품들에는 강 화백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화실도 운영을 중단하고, 회원들과 매년 열어오던 전시회도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 내 작품들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다 갤러리를 열고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차 한잔 마시며 작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다 갤러리를 오픈했다. 누구나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 분들은 환영한다. 다만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이다 보니, 아무 때나 방문하도록 오픈하기보다는 전화로 예약하시는 분들에 한해 오픈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그녀의 그림들 가운데에는 특히 가족과 가족애를 중시하는 그림들이 많다. 엄마와 아빠, 자녀가 함께 팔을 둥글게 펼쳐 서로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오롯이 묻어난다. 또 해바라기나 아이리스, 양귀비 같은 꽃 그림, 정물화, 풍경화, 추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작품세계에는 경계는 물론이고 브레이크도 보이지 않는다. 빨리 기력을 회복해서 그림을 더 그리고 싶다는 강 화백은 70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예술에 대한 영감이 넘쳐나고 있다. 강정화 화백의 개인 갤러리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720-448-4615로 연락해서 예약하면 된다.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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