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수필] 개미와의 타협

계속되는 가뭄과 더위로 땅이 활활 탄다. 없던 습기까지 겹치니 남가주는 숨을 할딱거리고 있다. 이러한 날씨에 항상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있는데 개미떼다. 그들도 더위와 갈증에 못 참고 대피소를 찾아 나선 모양이다. 금년에 나타나는 개미들은 예년에 비하여 몸집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보통 그들은 일렬횡대나 종대로 떼 지어 찾아오기 때문에 처리하기가 쉬웠다. 레이드 박멸제를 뿌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금년 그들의 공격 방법은 진화되어 게릴라식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먹잇감이 있거나 물기가 있는 곳, 즉 부엌, 화장실과 목욕탕은 물론이고 침실과 옷장 등 애매한 접속 부분이 있고 외부와 통할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있는 곳은 그들이 선호하는 좋은 통로가 된다.

중가주 곡창 지대의 물 공급도 끊기고 심지어 툴레어카운티의 주민들은 수돗물조차 부족하여 지역 공동 우물 탱크를 사용하여 식수를 해결한다는 소식이다. 내가 살고 있는 헌팅턴비치도 한 여름이라야 보통 최고 화씨 70도 후반을 넘나들었는데, 금년에는 90도를 넘는 기온을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참고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밤에도 흐르는 땀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우리집에도 산발적으로 개미가 몇 마리씩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이 쉽지가 않다. 최선책은 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다니면서 보는 대로 박멸하는 초전박살 작전이다.



정탐꾼들인 척후개미는 몸에서 내뿜는 페로몬으로 길을 닦아 다른 개미들을 불러들인다. 그러기에 그 떼가 몰려 들어오기 전에 처치하는 것이다.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방어 방법이다. 이렇게 그들과 싸우다 보니 작은 까만색 먼지 조각 마저도 개미로 보이며 몸도 근질근질한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경계의 눈빛으로 주위를 바라보며 어디에 숨어 있을 개미들에게 이야기하며 통보한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너의 조상들의 떼죽음 이야기를 통하여 족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위력이나 유대인 학살로 그 무서웠던 아유슈비츠의 가스실 주위에서 인간과 같이 희생되었던 너희들도 이젠 옛 이야기이다. 지금은 더 잘 개발된 강력한 살인 무기들이 있다는 것을 실험 장소 주위에 살고 있는 너희들은 잘 알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기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참지 못하고 한없이 악해진단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악함이 있다. 내가 너희들을 나의 집안에서 제거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야. 해충방제 회사 사람을 불러 처리하면 너희들은 죽어 최소 6개월간은 오염된 땅으로 말미암아 이곳에 발을 붙일 수도 없을 것이야.

그러나 나는 선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원래 선했는데 죄로 악해진 동물이다. 너희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한 너희를 희생시킬 마음은 없다.”

이렇게 난 계속 혼자 개미와의 독백전을 펼치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와 같이 사회적 조직을 갖고 서로 분업하며 의사를 소통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너희들의 지혜를 잘 알고 있다. 사막 열기에도 북유럽의 스텝지역 혹독한 추위에도 잘 견뎌내며 일부 빙하지역과 섬 몇 군데만 제외하고는 지구상 모든 곳에서 강인하게 살아온 너희들인 것도 난 책에서 읽어 족히 알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숫자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너희들. 1억3천만여년을 살아 왔으며 1만4천여 종족을 가진 너희들이지. 그렇기에 인간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도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 중 하나’라고 하며 너희들의 지혜를 배우라고 했다. 우리의 경험은 너희에 비하면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방인인 나에게 살고 있는 집이 너희들의 보금자리 위에다 세워졌다고 주장하며 수시로 허락 없이 들어와 권리를 행사하지 말기 바란다. 나도 너희와 같이 창조주의 지음 받은 몸이며 너를 포함한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까지도 부여 받은 더 위대한 인간이다. 보호구역인 나의 집에 들어와 간섭하며 교만스럽게 괴로움을 주지 말기 바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의 책에서 주장한 것같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우리와 나란히 걸어갈 것이며 뜨락 안에 도시를 세우고 있는 너희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우리들을 이해하고 나의 영역을 인정하여 침범하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세상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 주기를 바란다.”

개미에 대한 연구와 공부 끝에 이런 대화의 문을 열기로 한 내가 기특하다고 생각했는지 개들도 모처럼 슬금슬금 나를 피해갔다. 매일 매일 그 양이 줄어 들면서 지구까지 들먹였던 나를 무안하게 했다.

어느새 나의 호소를 들었는지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되겠다.


김규련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