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내 인생의 로또
사랑은 모든 걸 덮는다. 묻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 절망의 순간에도 손 내밀어 일어서는 용기를 준다. 무너지고 쓰러져도 어깨 껴안고 툴툴 털고 일어난다. 꽃 피우려 애 쓰지 않아도 향기가 온 몸으로 진동한다. 열매 맺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사랑은 이유를 캐묻지 않고 보이는 데로 믿는다. 막막한 세상에서 누굴 만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지를 사랑은 알게 한다.
간만에 연속극 보느라 재미가 쏠쏠했다. 다음 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꼴에 국어국문과 출신이라 삼류소설이나 연속극은 안 보는 편이다. 대학 때 배운 건 다 까먹었는데도 국어국문학계의 독보적인 거인 조동일 교수님의 현대문학 명강의는 시시각각 삶을 깨우친다. 천편일륜적인 구성, 우연의 남발, 개연성 빈곤, 권선징악이 넘치는 드라마나 소설은 피하는 편이다. 욕하면서 계속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의 완결편인 결혼과 이혼, 불륜 드라마에 왜 집착했을까.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30대의 DJ, 40대 라디오PD, 50대 라디오 작가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의사, 변호사, 교수란 직업의 남편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만 남편의 외도로 불륜과 이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라디오 방송의 메인 작가 시은은 일과 살림에 치여 변변히 꾸미기도 힘들다. 30년 동안 오직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며 악착같이 살아왔지만 남편이 뮤지컬 배우와 사랑에 빠져 이혼 당할 위기에 처한다. ‘엄마는 아빠에게 로또였어.’ 이혼을 강행하는 아버지에게 날리는 딸 향기의 저주는 가히 일품 명대사다. 로또는 당첨되면 일약 횡재하지만 몰락하는 사람이 많다. 미 복권 당첨자 가운데 90% 이상이 불행한 결과를 맞이 했다는 조사 결과는 거액의 돈이 행복의 지킴이가 되지 못함을 실증한다. 당첨보다 간수가 더 중요하다.
나는 두 번 로또에 당첨 됐다. 첫번째 로또는 리사 아빠다. 앞뒤 분별 못하던 철없는 말괄량이를 인내와 헌신적인 사랑으로 키워(?)준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사랑의 달빛으로 남아 어둔 골목길 돌아 갈 때 길을 터준다. 두 명의 찬란한 생명을 선사한 우서방은 생의 방향을 굳건히 다지는 디딤돌이다. 핏줄이 아닌 리사를 자기 자식보다 더 아끼고 돌보며 불평 잔소리 없이 삶이 흔들릴 때도 침묵으로 인내했다. ‘남편이 착하면 바람도 못 피워요.’ 후배가 농담으로 하던 말이다. 불륜과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불륜은 거미줄처럼 엮었다가 후 불면 끊어진다. 사랑은 우여곡절을 겪어도 끊어지지 않는 마디다. 이승에서 사람의 손으로 풀 수 없는 매듭이 생의 힘든 고비를 넘게 한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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