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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생업

작은 나무와 풀잎이 무성한 풀숲 언저리에 반짝이는 거미줄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빠르게 날아가는 새들과 커다란 왕벌의 날갯짓에 비하여 너무나 허약하게 보이는 그물이지만 작은 거미 한 마리는 정성을 다하여 한코한코 엮어가고 있다. 나름 위험하고 귀여운 함정을 햇볕 거슬려 바라보면 그 촘촘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조그만 참새 날갯짓 하나에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그것은 너무나 대단치 않은 먹이 사냥 그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을 엮는 거미에게는 생애를 거는 중요한 일이다. 연약하고 가느다란 그물망에도 피해 가지 못한 아주 작은 먹이들이 있어 그것으로 거미는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야생의 세계라는 기록물을 보면 여러 가지 동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먹이를 구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 여러 가지 수단이 곧 그들의 생업이다. 풀을 먹는 초식동물들은 풀이 많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한다. 튼튼한 다리로 먼 거리를 옮겨가는 일이나 계절을 따라 먹이가 되는 이끼류를 찾아 눈 덮인 툰드라를 떼 지어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다. 땅 위에 자라나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 어떤 의미로는 편안한 생업을 가지고 있다. 육식동물의 아침, 점심은 쉬지 않고 도망가며 움직이는 밥상이다.

그들보다 더 빨리 뛰어가거나 숨어서 몰래 잡아채는 것은 힘든 그들의 생업이다. 높은 하늘을 유유히 나는 듯이 보이거나 어두운 저녁 나뭇가지에 조용히 앉아 숲을 응시하는 맹금류 날짐승은 그런 자세를 유지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달려들어 먹이를 낚아채는 동작이 그들의 생업이 된다.

어느 소설가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표현했듯이 지겨운 것이지만 피하지 못하고 해내어야만 하는 생업으로서 밥벌이라는 행위의 근본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아직 한 군데 자리 잡고 살지 못할 때 먹을 것은 항상 부족하였다. 생업이자 하루의 일과는 먹을 것을 찾거나 사냥으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다 나은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옮겨가는 발걸음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게 하는 모든 것이 정말로 귀중한 것이었다. 돌멩이를 깨뜨려 사용하던 도구가 발전하여 지금의 복잡하고 다양한 도구와 기술로 분화되었듯이 단순히 먹을 것만 좇던 일과 또한 여러 가지 복잡한 행위로 발달하여 그만큼 많은 종류의 생업이 나타났다. 사람의 경우는 그것을 직업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직업은 많이 다양해진 사람들의 삶에 먹거리를 넘어 다른 의미를 지니는 여러 가지를 제공해주는 노동이 되었다. 많은 종류의 직업이 저마다의 뜻을 가지며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어느 신학자는 직업의 귀중함을 강조하며 직업이 성업 즉 거룩한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당연히 이 땅 위에 이 시간 허락된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은 중요하고 귀중하고 가치 있고 확대하여 해석하면 거룩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생업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하찮은 거미줄 하나를 정성 들여 만들어 가는 작업을 바라보며 생명 유지를 위한 귀중한 생업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작은 거미의 노고조차 심상치 않아 보인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업, 즉 직업과 그것에 열심히 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어떤 깨달음이 함께하는 숲에서의 시간이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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