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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됭케르크

‘자동차 한 대와 승객 4명의 편도 운임이 최저 81유로(식사 포함).’

프랑스 됭케르크(Dunkerque)와 영국 도버 간 카페리를 운영하는 DFDS 홈페이지 전면에 자랑스레 내걸린 문구다. 인구 8만여 명의 작은 도시 됭케르크는 칼레와 함께 도버해협 너머로 사람들을 실어 보내는 대표적 항구 도시다. 이곳에서 배에 오른 승객은 식사와 면세 쇼핑을 즐기면서 유유자적 두 시간을 보내면 영국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1940년 5월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영국·프랑스 등의 연합군 수십만 명이 됭케르크에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전연패한 유럽 각지의 연합군은 3면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는 독일군에 밀려 독 안에 든 쥐 꼴로 이 좁은 항구 도시에 밀집했다. 해상 탈출이 가능한 프랑스 항구 도시 중 칼레와 볼로뉴쉬르메르는 이미 독일군 수중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됭케르크는 유일하게 뚫려있던 면(面)이자 점(點)이었다.

하지만 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영국 정부는 선박 징발령을 내렸고 국민은 뜨겁게 호응했다. 정부가 요구한 건 배였지만, 영국인들은 배만 보내지 않았다. 어선, 화물선, 유람선, 레저용 요트에 이르기까지 민간 선박 650여 척이 위험을 무릅쓴 선주들과 함께 됭케르크로 향했다. 해군 함정 220여 척을 포함해 900척에 가까운 배들은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군사 33만여 명을 나눠 싣고 영국으로 귀환했다. 당시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철수작전이었다. 이때 생환한 병력은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과 종국적인 연합군 승리의 발판이 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2017)로 새삼 익숙해진 이야기다.

탈레반의 표적이 된 친미(親美) 아프가니스탄인 구출 작전에 이 도시의 이름이 붙었다. 퇴역군인 등 ‘디지털 됭케르크’라는 이름의 이 구출작전 참여자들이 한 뼘의 바다도 없는 아프간에 보내는 건 배가 아니라 디지털 정보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정보를 모으고 위성사진을 분석해 남겨진 이들에게 탈레반 회피 경로를 알려주고 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정보의 방주를 타고 국경을 무사히 넘기를 바라본다. 강고한 반(反)이슬람 정서의 벽을 뚫는 작업은 일단 살아남은 뒤에 고민할 일이다.


박진석 / 한국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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