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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Z세대를 응원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하기 보다는 나의 몸과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

체조의 여왕 미국선수 시몬 바일스가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 기권하면서 인터뷰 한 내용이다. 각계에서는 바일스에게 비난이 아니라 격려와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Z세대의 올림픽 관전법이라고 한다. Z세대란 1990년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국가의 성공보다 개인의 노력, 메달의 순위보다 개인의 스토리와 스포츠맨십에 더 주목한다.

신문 기사를 읽고 있을 때 카톡창에 사진 한 장이 떴다. 손자가 샛노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고 있다. 아들 남이가 한국에서 보낸 것이다. 줄넘기 1500개를 해서 학원에서 받았다 한다. 1500번을 뛰었을 어린애에 놀랐고 그런 학원이 있다는데 또 놀랐다.

“너도 참 너무한다. 아홉 살짜리한테 그러고 싶니? 무릎이랑 괜찮을까?”

“엄마! 걱정 마세요. 형은 애 나이 때 어땠는지 아시잖아요. 애한테 얘기해 줬어요.”

“네 일은 잊었니? 너는 자식한테 안 그럴 줄 알았다.”

40년 전 일이다. 형 대니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스피드 스케이트선수에 뽑혔다. 혜화동에서 동대문 스케이트장까지 장비가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혼자 다녔다. 스케이트장이 하나밖에 없던 때라 연습 끝나고 집에 오면 늘 밤이었다. 겨울엔 손발이 얼어 터졌다. 그래도 아빠와 코치가 시키는 대로 했지 싫다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남이는 그 얘길 하는 것이다.

동생 남이가 중학생 때다. 집에 오자 갑자기 데굴데굴 굴렀다. 배가 끊어질 듯 아프다 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가 싶더니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서둘러 병원을 가니 극심한 스트레스로 장이 꼬였다고 한다.

아들의 얘기는 시험이 너무 많은데다 등수를 공개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것, 집에 오면 아빠가 선생님보다 더 무섭기 때문에 편할 날이 없다고 했다.

“엄마, 나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해요. 좀 기다려 주세요.”

눈물로 호소하는 아이의 심정을 나는 그의 아빠에게 전했다.

예민해진 상태니 좀 기다려 주자고 합의했건만 자기가 정해 놓은 점수가 나오지 못 하면 ‘최선을 다 하지 못 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전제를 달고 매를 드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는 날밤을 세운다 해도 시시포스의 바위였다. 뛰는 아이를 그릴 때 얼굴 표정과 다리가 아니라 운동화 밑창의 고무돌기를 그리는 추상적 안목을 가진 아이는 아빠에게도 그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과제였다.

중학교 2학년 봄에 남이의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을 넘었다. 거식증이었다. 이번에도 의사는 심각한 스트레스라며 ‘절대 안정’이라는 경고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아빠는 ‘마지막 10%를 다하라’고 강요했다. 결승점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가느다란 선이었다. 닿거나 닿기 전에 넘어질 한계선.

남이가 말하는 숨 쉴 구멍이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한글을 깨우치기 전부터 손에서 놓지 않던 세계미술전집은 은밀한 그의 도피처가 되었음을 아빠는 모르고 있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와중에 내 첫 동화집 ‘초록반 아이들’을 김영사에서 출판하게 되었는데 삽화를 남이가 그렸다. 스트레스성 고열로 입원 중이었으나 그림 50장을 마감 날짜에 맞춰 주었다. 순수한 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며 독자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 일은 남이의 인생항로를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남이는 자기의 뜻대로 예술 고등학교를 거쳐 미술대학을 무난히 졸업했다. 첫 전시회 리셉션에 아빠를 초대했다.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당당히 나타난 그는 그림을 슬쩍 둘러보고는 음식도 맛보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빠는 아들의 재능을 못 알아보고 강퍅하게 밀어붙였던 자신을 사과하려고 했다. 하나, 모호한 선들과 감이 잡히지 않는 형체들의 추상화를 본 순간, ‘이따위 것을 그리라고 내가 뼈 빠지게 뒷바라지 했던가’ 배반당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부자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마주 보며 달리다가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아들의 아들이 줄넘기를 하여 금메달을 받은 날 마주 보며 웃었을지도 모른다.

대니의 선수 생활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빙상코치와 아빠, 두 사람의 코치가 그를 이끌었다. 스트레스도 두 배였음을 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선수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맞고 말았다.

“선수생활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오랜 침묵을 깬 목소리는 단호했다. 두 코치의 격렬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지금은 미국에서 젊은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줄넘기 소식을 듣고 그는 말한다. “죽도록 힘들었지만 아빠의 코치로 오늘의 내가 있는 건 확실해.”

우리의 자녀들은 가정과 가문의 선수들이었고 국가의 선수들이었다. 전쟁 후의 대한민국은 선수 개인의 스토리나 스포츠맨십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이겨야만 했었다. 요즘처럼 실패한 선수라도 미담이 있으면 찾아가 격려하고 대서특필로 세상에 알리는 때가 아니었다. 선수들이라고 끓어오르는 불만이 없었을까 만은 불평을 말할 상황이 아님을 알고 오직 끈기와 인내로 코뿔소처럼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다.

그렇게 자란 대한의 자녀들이 지금 세계로 퍼져 나가 자기 몫을 당당히 하고 있음을 본다. 행복은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 미국에 와서 학교 가는 아이에게 ‘Have a fun!’하는 부모를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인생은 즐기는 것이었어!” 가슴 속에서 사춘기를 잃어버린 소녀가 소리쳤다.

오늘 Z세대의 올림픽 관전법을 읽으며 내가 이런 멋진 세상에 살고 있음에 기분이 좋다. 바일스가 복귀했음에 찬사를 보낸다. 금메달리스트 내 손자에게도 말해줘야겠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그리고 무엇을 하든 Have a fun! 할머니가 응원 할게.”


김태영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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