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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커피 두 잔의 욕심

여보, 욕심 부리지마. 남편의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산책 코스를 잘못 택한 탓이다. 요즘 내 산책 코스는 ‘맑은 물(Bright Water)' 주택단지의 새로 만들어진 길이다. 왕복 2마일이 조금 넘는 코스로 지금 내 몸 상태에 딱 맞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다. ‘워너(Warner)’ 길과 ‘스프링데일(Springdale)' 길이 만나는 코너를 택했다. 우리 집에서 거기까지 왕복은 3마일이 넘는다. 차량 통행이 잦은 길이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2019년 8월 말 어느 문학협회 여름 세미나를 마치고 2박3일의 그랜드캐년 여행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애리조나주 오크그로브 고스트타운(Oak Grove Ghost Town)을 지나게 되었다. 버스 가이드가 거기서 30분 쉰다고 했다. 한때는 금광이 발견돼 붐을 이뤘지만 금광이 폐쇄된 뒤 낙후돼 고스트 타운으로 남게 된 곳이다.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시작해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끝나는 66번 고속도로(Route 66)에 위치해 있다.

여기 잠든 유령들을 깨우지 말라는 경고였을까 저주였을까. 토산품 목걸이를 하나 사들고 버스로 뛰어오다 자갈에 걸려 쪼르르 미끄러졌다.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방정맞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그해 9월17일 발목수술을 받았다. 정상대로라면 다음해 5월말 수술을 해 처음에 박은 8개의 스크루를 모두 뽑을 예정이었다.

누가 알았으랴, 2019년 12월 중국 우안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인간 세계를 이렇게 뭉개버릴 줄을. 세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병원에 가는 것도 무서워 나는 발목 수술을 코로나가 끝난 뒤로 미뤘다. 코로나 초기 때는 곧 정상복귀하리라 생각했지만 기대와 달리 코로나는 우리의 경제, 일상생활, 인간관계를 부수고 파괴시키며 점점 더 기승을 부렸다. 거기다 여러 가지 변이까지 돌출시켰다.

그 팬데믹 속에 나는 작년 7월 말 오른쪽 어깨수술을 받았다. 4년 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다. 내 건강이 싱크홀처럼 내려앉고 있는 듯했다. 내 오른 팔은 2달 넘게 팔걸이 신세를 졌고 왼쪽 다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손톱 밑에 가시만 박혀도 뽑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하는 내 성격이다.

산책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동네에 있는 맥도널드 앞을 지나게 되었다. 살아 생전 남편이 아침마다 사다주던 커피의 향기가 나를 불렀다. 절름절름 문을 열고 들어가 어깨에 맨 가방을 열었다. 1달러짜리 2장이 들어 있었다.

어, 돈이? 하긴 요즘처럼 갈 곳도 없고 가지도 못하는데 무슨 돈이 필요한가. 지갑을 열어본 지도 까마득하다. 나는 2달러를 만지작거리며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2달러로 살 수 있는 패스트푸드는 없었다. 드링크 메뉴를 쳐다보았다. 커피가 얼른 눈에 띄었다. 커피 한잔은 3달러89센트였다. 세금이 더해지면 4달러가 넘는다. 와, 커피 한 잔에 4달러라고. 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킬 때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곳의 커피 값이 훨씬 비쌌는데도 왜? 그때 나는 돈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풍요 속에 궁핍은 없다. 준비된 자와 준비가 안 된 자. 전자는 긍정적이고 후자는 부정적이다. 준비하며 사는 인생으로 늘 풍요롭고 싶다.

아! 그렇지, 시니어 커피가 있지. 시니어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커피 머신으로 가는 순간, 내 머리가 또 빠른 회전을 했다. 서둘러 그를 불러 세웠다.

“시니어 커피로 두 잔이요. 괜찮죠?”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예스 맴. 당연히 괜찮죠.”

2달러의 가치가 커피 두 잔의 부피만큼 부풀었다. 프리웨이 입구에서 홈리스들이 구걸을 할 때 1달러 2달러를 통에 넣어주곤 했다. 바로 그거였다. 내가 넣어준 그 작은 돈은 어디선가 늘 제 값을 한 것이다. 돈이란 많고 작음을 떠나 늘 제 값을 한다. 나도 그처럼 제 값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종업원이 담아준 시니어 커피 두 잔을 왼손으로 받쳐 들고 엉덩이로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식당 안도 밖의 테이블도 모두 노란 줄이 쳐 있었다. 빨리 집으로 가자.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손에 받쳐 든 커피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커피의 율동을 따라 내 몸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휘청거렸다. 봉투에다 넣어줄 것이지. 미련한 아가씨 같으니. 금방 ‘마담’이라 불러줘 살갑고 예쁘던 아가씨가 미련퉁이가 돼버렸다. 변덕이 조석지변이 아니라 분초다.

‘앗 뜨거!’ 왼손에 받쳐 들고 있던 커피가 하얀 거품을 뿜으며 손목으로 쏟아졌다. 나는 모닥불에 튕긴 모기처럼 팔짝 뛰었고 뜨거운 커피가 양말을 적시며 운동화 속으로 흘러들었다. 땅에 앉아 양말을 벗었다. 빨간 발등이 금방 구워낸 연어 같다.

한 잔만 주문할 것을? 내 건강상태를 무시한 산책 코스! 내 몸을 더 망가뜨렸을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마시던 시니어 커피 한 잔의 맛, 그 향기를 망각한 욕심! 죗값이다.

커피가 졸졸 길가의 골을 따라 흘러갔다. 얼핏 저만치서 남편이 나를 보고 가만히 말했다. 여보, 욕심 부리지마. 내가 아침마다 커피 한 잔 씩 사다 줬잖아.


임지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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