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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꼭 하고 싶고, 해야 할 시간

별 것 아닌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30년 넘게 살던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아쉽고 아리다. 생의 삼분지 일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리 뛰고 저리 설치며 살았던 불꽃 같은 장년을 이쯤에서 접는다. 단촐하게 살 생각을 한다. 딸은 동쪽 끝 뉴저지에, 아들은 서쪽 끝 샌디에이고 둥지 틀고 손주를 넷이나 선물했다. 목을 길게 빼도 그리운 조국도 애들이 사는 땅도 보이지 않는다.

뭉개구름이 뛰엄뛰엄 쉬어가는 코발트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진초록의 수목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한 여름 햇살이 부채살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중서부에 뼈 묻을 생각을 한다. 그대 등에 기대 사랑을 꿈꾸며 애들 웃음소리가 별사탕처럼 달콤하게 밤하늘을 수놓던 ‘등대집(Lighthouse Trail)’을 내일 떠난다.

음유시인이고 리라의 명수인 오르페우스는 어머니로부터 시와 노래를, 음악의 신 아폴론으로부터 리라 연주를 배웠다. 아폴론이 선물한 황금 리라로 연주를 하면 초목도 감동 받고 사나운 맹수들조차 얌전해졌다. 뱀에 물려 죽은 아내를 못 잊어 저승으로 내려가 애절한 연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하락을 받는다. 저승의 왕 하데스는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망자인 에우리디케를 향해 몸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지상의 빛이 비치자 아내가 애타게 보고 싶은 오르페우스가 잠깐 뒤돌아보는 순간 약속을 어긴 벌로 에우리디케는 안개의 정령이 되어 저승으로 추락하게 된다.

인간은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없다. 사랑이 구원이 되지 못한다. 그리움은 그리워 하는 자의 몫이다. 떠난 사람, 흘러간 시간은 추억의 강에 매미 소리로 들린다. 올해 여름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매미 울음 소리가 유난히 장엄하다. 매미는 늘상 울고 있었는데 내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닐까. 매미는 수컷만 운다. 힘차게 울어야 짝짓기도 하고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다.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컷처럼 울지 않아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암컷도 속으로 운다.

복숭아 나무에 작은 복숭아가 아롱다롱 앙증맞게 달렸다. 강산이 세번 변하는 동안 봄이 오면 우람한 덩치에 연분홍이 감도는 흰색 꽃을 온 몸에 달고 마당을 흐드러지게 가득 채웠다. 작별 인사인가. 처음으로 주렁주렁 열매 맺었다. 아깝고 귀해서 따먹지도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것만 주워 봉씨 아저씨와 나눠먹는다. 계란 만큼 쬐그만하지만 꿀맛이다. 오래 살다 보면 꽃피는 시절은 지나가도 열매 맺는 날들도 있구나! 연분홍 꽃잎 지면 낙화되는 줄 알았는데 진노랑과 주홍으로 물들인 단단한 껍질 속에 달콤한 속살 키우고 있었구나.

인생은 그리지 못한 것보다 여백으로 남은 시간이 소중하다. 동양화의 여백은 우아하고 기품 있다. 비어있는 것은 넘치는 것보다 담백하고 신비롭다. 동양화의 여백은 먹의 농담을 잘 드러내고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예지한다.

그 동안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적는다. 간섭도 이해도 설명도 필요 없는 생의 본질(Essance)를 엑기스(Extract)로 추출할 시간이다. 여백은 남은 빈자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리지 못했던 화폭의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애타게 보고파도, 바보처럼 고개 돌려 도루묵 되지 말고, 안 보이는 것을 보고, 안 들리던 것에 귀 기울이면 아름다운 리라 소리 들을 수 있으리라. 신이 아닌 인간은 사랑도 사람도 구할 수 없어 사는 게 지치면 잠시 그리워 할 뿐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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