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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후드득후드득 주룩주룩, 똑 똑 똑 또독또독, 꼴깍 솨악,

무슨 소리? 찰나를 지나 영겁의 세월을 건너가는 내가 만난 오늘 아침의 물소리다. 눈을 뜨자 창문을 여니 후드득후드득 주룩주룩, 늦여름 비가 내렸고(비에 다소곳이 고개 숙인 뒷마당의 노란 호박꽃이 순하다. 닮고 싶다) 똑 똑 똑 또독또독, 찻물을 내려 꼴깍, 마시고, 솨악, 샤워하고 햇볕에 말린 깔깔한 면티를 입고 손깍지를 끼어 턱밑에 받친다. 동그란 얼굴을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 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고개를 하늘로 올린다. “흠” 숨을 길게 들이마신다. “하” 소리를 내며 숨을 뱉어낸다. 긴 호흡으로 하루를 연다.

사실, 이렇게 날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지만, 쨍쨍 개였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여우비가 내리는 날씨같이, 안팎으로 변수가 많은 하루를 부대끼고 나면, 꼬이고 엉켜진 감정을 대하며 울고 싶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상심을 잃지 않고 매일매일 좋은 날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든지…고도로 정제된 마음의 내공이 필요한 듯하다.

그런데 마침, 오모리 다츠시 감독의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 매일 좋은 날, 명상처럼 차분히 가라앉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하였다. 스무 살의 여주인공 노리코(쿠로키 하루)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삶의 혼동 속에 다케타(키키 키린) 선생에게서 다도를 배우며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 마음속의 막연함과 두려움과 지루함과 외로움의 혼동 속에서도 평정을 찾아가는 나직한 숨소리 같은 영화이다.



흐르는 모든 물소리에 감성을 이입하는 음향효과의 진수에 젖어 들게 하는 이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절기와 날씨 속에 노출되는 예민한 감성의 흐름을 차분히 담아낸다. 서정적인 봄비, 격정적인 여름의 소낙비, 우울의 가을 빗소리, 싸락눈 내리는 소리, 보르르 물 끓는 소리, 주르르 주전자에서 찻잔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 심지어는 차가운 물과 더운물의 미묘하게 다른 물 끓는 소리까지 담겨 있다.

시적인 영상 속에 고이고, 흐르고, 떨어지고, 맴도는 모든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케다 선생님의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는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라는 대사의 깊은 의미를 헤아려보며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차분히 마음을 빗질하게 된다.

영화를 본 그 날 밤 잠들기 전 나의 손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적혀 있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페이지가 펼쳐져 있는 것은 영상의 강렬한 여운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중략) 매일 매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하루, 하루를 어떻게 하면 나 자신과 다투지 아니하고 거스르지 않고 막히면 돌아가는 밝은 지혜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가만히 질문하는 나에게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생에 단 한 번이다 생각하고 임해 주세요.” 다케다 선생님의 부드럽고 절도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영화의 깊은 여운! 그 큰 울림에 넉넉히 젖어 환한 마음으로 밖을 보니 후드득후드득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린다. 차를 내리러 타박타박 부엌으로 발을 옮긴다.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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