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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북한말 자막이 나오는 한국영화

“피는 물보다 진했다.” 1991년 1월 24일 중앙일보 3면 기사의 첫 문장이다. 이날 신문은 1면·3면에 걸쳐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함께 탈출에 나선 과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분단의 시대, 남북 체제 대결의 시대에 그야말로 “체제와 이념을 초월한 순수한 동포애”로 이뤄진 일이었다.

영화 ‘모가디슈’는 이 영화 같은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 살육·약탈·방화가 벌어지는 내전의 참상과 더불어 남북 대사관 직원들이 생존을 위해 합심하게 된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할리우드식 액션 영웅은 없지만, 반군과 정부군이 총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남북한 사람들이 자동차에 나눠 타고 이동하는 과정의 액션 등 극적인 볼거리가 뚜렷하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로는 처음 100만 관객을 넘겼고, 계속 흥행 중이다.

희한한 것은 자막이다. 영어 등 외국어 대사만 아니라 극중 북한 사람들 대사에도 자막을 붙였다. 배우 허준호가 연기한 소말리아 주재 북한 대사를 비롯해 이 영화의 인물들이 유독 북한식 억양이 심한 것 같진 않다. 적어도 내 귀에는 잘 들려서, 옆 사람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알려준 뒤에야 자막의 존재를 깨달았다.

왜 자막을 붙였을까. 연출자 류승완 감독이 시사회 직후 언론간담회에서 답한 요지는 “북한을 ‘외국’으로 그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서 남북 첩보전을 다룬 영화 ‘베를린’(2012)을 만든 뒤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영화에 대해 “북한을 예전 관점처럼 통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표현하려고 했다”며 “소말리아 모가디슈가 여행금지 지역이라서 못 가는 것처럼 북한 평양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온전히 타국으로 인지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인물들을 이해하기가 빠를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말은 종종 물보다 진하다. 영어처럼 널리 쓰이는 말이 모국어가 아닌 이상 낯선 곳에서 우리말을 들으면 반가움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런데 말은 세월과 함께 조금씩 달라진다. 하물며 남북은 대중적인 직접 소통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이제는 자막도 요긴한 때가 왔다. 남북 합동 탈출이 이뤄진 1991년은 분단 반세기가 채 안 됐을 무렵이다. 그로부터 30년, 한 세대가 지났다. 지금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남북의 ‘같음’을 강변하는 대신 ‘다름’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설득력 있어 보인다.

대중의 눈높이에 예민한 흥행 감독의 판단에서 냉정한 현실 인식이 묻어난다. ‘모가디슈’는 애써 눈물샘을 자극하며 남북 간의 동포애를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신파적 사건 대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으로 유대감을 보여줄 뿐이다.


이후남 / 한국 중앙일보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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