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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박한 행복

“나이 들어 이국 땅에
와서 자식들 옆에서
자식들을 의지하고
살고 있으니
무엇이든 혼자서는
결정이 어려웠다”

얼마 전에 아주 사소한 일로 친구와 길고 조금은 언짢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불분명한 태도 때문이다. 친구 딸이 이번에 새로 집을 샀는데 1년 전에 들여놓은 모든 가구들을 밖으로 내놓으려 하니 나에게 침대가 필요하면 가져가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 집은 총 3개의 침대가 있는데 모두 10년이 넘은 오래된 것들이다. 특히 둘째 내외가 오면 자는 침대는 15년이 되어 새 침대로 바꿔 주고 싶었다. 남편은 멀쩡한 침대를 왜 바꾸려 하느냐고 반대하고 또 당사자인 딸도 1년에 몇 밤이나 잔다고 바꾸냐고 완강히 사양했다. 그래서 온다고 연락하면 시트와 이부자리 등만 깨끗하게 해주던 참이었는데 1년도 안 되고 또 비싼 오개닉 침대라고 하니 나도 솔깃했다.구체적으로 오개닉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좋을 것 같았다.

친구 딸은 우리 주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부유하다. 부모 친척들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가족끼리 여행할 때도 전세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고 들었다. 전세 비행기가 있다는 소리는 친구에게 처음 들었다. 친구는 딸이 이사 오기 전 딸 집에 갈 때면 사위가 비행기를 보내줘서 타고 다녔다. 혼자 타고 가기가 너무 아깝다고 나더러 같은 지역에 사는 우리 아들 집에 같이 타고 가자고도 했다. 나는 한 번도 동행은 못했지만 생각해주는 마음만은 항상 고맙게 받았다.

이번에도 친구 딸이 쓴 물건이라 나쁘지 않아 가까이 사는 큰 딸과 사위에게 의향을 물어보니 모두가 반대였다. 아주 완강했다. 변화를 싫어하는 남편은 무슨 일에나 그렇듯이 화를 내며 반대를 하였다. 지금 있는 침대는 받침대가 부서져 없으므로 낮고 머릿장만 세워져 있다. 나는 제대로 된 한 세트를 가져와서 단정하게 놓고 싶었다. 그렇지만 식구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반대가 심하니 결정이 힘들었다.

이튿날 친구는 또 전화를 해서 딸과 사위가 외부인이 오는 것을 싫어하니 그들이 집에 없는 바로 그날 오전 중에 가져 가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우리 집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남편도 사위도 딸도 침대 가져오는 것을 다 싫어한다고. 그런데다 코로나까지 겹쳐 있으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도 했다. 잠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친구는 우리가 이해가 안된 것 같았고 특히 우리 딸이 싫어한다는 말에 더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시간을 가지고 우리 식구들을 설득하려 했다고.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미국에서 살려면 ‘Yes’와 ‘No’를 분명히 해야한다고. 그리고 네 명 중에서 세 명이 싫어하면 No라고 진즉 얘기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계산법이 있는데 나는 왜 그리 고민했을까?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지 결정이 힘들고 Yes와 No가 어렵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결정해라 했더니 그럼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나도 어느 때까지는 Yes와 No를 분명히 한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낯선 이국 땅에 와서 자식들 옆에서 자식들을 의지하고 살고 있으니 무엇이든 혼자서는 결정이 어려웠다.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들이 도와주어야 하니까. 친구는 나에게 재차 충고를 하였다. Yes와 No를 분명히 해야한다고. 나도 앞으로는 그래야겠다고 말했다.

친구의 충고가 고맙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 집 분위기를 파악하여 No를 했다면 친구가 여러 번 전화도 안 했을 것이며 구차하게 여러 말도 안 했을 것이다. 친구와 나는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어린 시절 고등학교 동창이다 보니 이런 문제로 둘 사이에 어떤 변화는 없다. 친구도 이번 일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더 나를 돌아 보게 되었다.

오래 전이지만 내가 결혼할 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혼수로 자개농을 해갔다. 그런데 나는 철제 캐비닛을 샀다. 아버지가 많은 쌀가마를 내어 팔 것을 생각하여 이거면 충분하다고 하며 그때 돈 10만원으로 부족한 방값을 보태고도 모든 살림을 다 사지 않았던가! 그래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 “사람의 괴로움은 끝없는 욕심에 있다.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면 마음은 항상 즐겁다”고 했다. 이번에 잠깐 욕심을 부려 그동안 꿋꿋이 지켜온 나의 지조를 잃고 친구를 힘들게 한 것 같다. 침대가 없으면 또 어떤가? 집에 요도 이불도 많은데. 언젠가 며느리가 왔을 때 아이들이 셋이라 재울 침대가 부족해서 미안해 하니 “어머님, 방바닥에서 요 깔고 자도 돼요, 잠깐인데요. 뭐”라고 했다. 며느리의 때 묻지 않은 소박한 마음이 기특했다. 며칠 전에 대학이 종강을 해서 둘째 딸 내외가 사흘 밤을 자고 갔는데 유난히 밤에 더워했다. 나는 속으로 그 오개닉 침대를 가져 왔으면 시원했을까? 잠깐 생각하며 픽 웃었다.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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