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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아프가니스탄

‘존 웨인과 스티브 맥퀸의 영화를 보고, 미적지근한 코카콜라와 장미 향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빅토르 위고, 쥘 베른, 마크 트웨인, 이안 플레밍의 책을 읽었다. 포드 스포츠카를 운전하면서 스카치위스키와 프랑스산 와인에 취해 파티를 즐겼다.’

1960~70년대 유럽이나 미국 중산층 가정의 일상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 묘사한 당대 아프간 상류층의 생활상이다.

군주제(1919~1973) 하의 아프간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서구의 세례를 듬뿍 받았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활보하는 수도 카불의 당시 사진은 호세이니의 묘사가 사실에 가까움을 증언한다.

물론 이 이례적인 평화와 개방의 시대는 매우 짧았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아프간은 외침에 시달렸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영국·구 소련·미국이 그 험준한 산지를 탐내 손을 뻗었다. 외세와 영합하거나 투쟁한 세력들은 나라를 수시로 뒤집었다. 1919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한 세기 만에 아프간 국민은 왕정, 공화정, 공산주의 체제,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호세이니의 표현대로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폭탄 소리와 총성 외에는 없는 세대’가 태어났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는 원리주의 세력을 가장 경계했다. “턱수염을 길게 기른 백치들한테서는 가치 있는 걸 배우지 못할 거다. 그들은 염주알만 굴리면서 자기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로 쓰인 책을 암송하지. 아프간이 그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큰일이다”라고 경고하면서다. 아프간이 그자들, 그중에서도 극도의 폭력 성향이 더해진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두 번째로 들어갔다.

다른 정권들은 비록 능력이 뛰어나거나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축구장에서 공개 처형을 하지도, 간통한 이들을 돌로 쳐 죽이지도, 여성을 부르카 속에 감금한 채 기본권을 박탈하지도, TV와 영화를 금지하지도, 소수민족을 집단학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 탈레반은 1996년 첫 집권 때 그렇게 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장담했지만, 카불 공항의 탈출 행렬로 미뤄볼 때 믿는 이는 적어 보인다. 야만의 시대로의 퇴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프간 국민의 절규와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다.


박진석 / 한국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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