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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知思志)] 피난민

15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함락됐다. 이날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에 매달린 아프가니스탄 피난민 행렬은 40년 전 베트남 전쟁을 다룬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월남(남베트남)의 패망 과정은 비슷했다. 미국으로부터 많은 물량을 지원받았으나 만연한 부패와 낮은 사기로 스스로 무너졌다.

6·25 전쟁도 다시 생각해본다. 서울은 사흘 만에 함락됐지만, 북한의 주력군이 낙동강 전선에 도착한 것은 8월 5일이다. 이에 대해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 1950 전쟁과 평화』에서 “38선에서 낙동강까지의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지는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군은 남한군의 상당한 저항을 받았던 것”이라고 썼다. 8월 5일부터 시작된 낙동강 공방전도 인천상륙작전(9월 15일)까지 41일간 벌어졌다. 전쟁 전 북한의 박헌영은 ‘전쟁이 나면 남한에서 20만명 가까이 폭동을 일으켜 호응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김일성은 1963년 인민군 창설 15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부산에서 노동자들이 몇천 명 일어나서 시위만 했더라도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남반부 인민들이 조금만 들고일어났더라면 우리는 부산까지 해방하고 미국놈들은 상륙하지 못했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 친일파에 의해 주도되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궤변에 불과하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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