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음모론 최면에 빠진 ‘베개 아저씨’
어느 순간부터 미국 뉴스에 ‘마이 필로 가이(My Pillow Guy)’라는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우리 말로 하면 ‘베개 아저씨’ 정도 될 텐데, 침구류 업체를 운영하는 마이크 린델이다.콧수염 기른 중년 남성이 큰 베개를 안고 직접 TV 광고에 나와 “우리 제품은 미국에서만 만든다”는 ‘신토불이’ 홍보를 하며 나름 명성을 얻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도 잘 맞아떨어져 보수층 고객을 많이 끌어모았다. 광고도 폭스뉴스 등 보수 매체 위주로 내보냈다.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며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대선 후보를 뽑는 공화당 전당대회엔 시민 연사로 나섰다.
대선 패배 후 공화당 인사 대부분이 등을 돌렸을 때도 그는 끝까지 ‘트럼프의 전사’로 남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거 조작을 주장했고, 동조하는 유튜버들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유튜브 방송에선 출연자들이 조 바이든 정부를 한참 비판하다가 뜬금없이 “마이 필로 닷컴에서 침구를 사라”는 홍보를 하기도 한다.
급기야 린델은 베이징이 미국 대선을 해킹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심포지엄도 열어 암호 같은 숫자가 가득 적힌 파일 사본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CNN 의뢰로 이를 검토한 9명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특별한 의미 없는 16진법 숫자의 나열이라고 결론지었다. 해킹을 증명할 단서가 전혀 없다고 했다. 린델과 함께 일한 보안 전문가 역시 해당 파일로는 중국의 개입을 밝혀낼 수 없었다고 언론에 털어놨다.
이런 와중에도 그에게 해킹된 선거구로 지목된 카운티에는 열성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개표기는 인터넷에 연결된 적 없다”고 아무리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한 팟캐스트 진행자는 “이런 일을 할 용기와 배짱이 있는 사람은 린델밖에 없다”며 치켜세웠다.
이들에겐 진실보단 ‘듣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도 린델은 트럼프의 집회에 동행하며 음모론을 전파하고 있다.
음모론을 정치 전략으로 채택함으로써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두 가지 있다. ‘민주주의 파괴’와 ‘책임의 위기’다. (전상진 ‘음모론의 시대’) 비단 선거 결과뿐 아니라 사법부 판단, 언론 보도까지 무조건 음모론으로 몰아가려는 이들이 많다. 책임을 피하겠다고 음모론의 최면에 빠지면 본인과 지지자의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는 상처를 받는다. 이미 음모론을 떠올리는 순간,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김필규 /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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