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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Carpe Diem

2주 전에 손주 둘이 우리 집에 와서 며칠 묵었다. 나는 일을 해야 했기에 일요일 밖에는 긴 시간을 함께할 기회가 없었다.

날씨는 아주 바삭바삭할 정도로 청명했다. 그리 덥지도 않아서 바닷가에 몇 시간을 보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햇살이 파도에 묻어 잘게 부서지고, 하늘엔 갈매기가 아주 한가롭게 날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 자신 별로 물과 가깝게 지낸 적이 없었다. 바다에 갈 기회도 별로 없었고, 바닷가로 집을 옮긴 후에도 바닷가를 따라 걷기는 했으나 바닷물에 몸을 적신 적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손주들이 없었다면 나는 앞으로도 자발적으로 바닷물에 들어갈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은 손주들과 모래밭에서 작은 성도 만들고, 어릴 적에 하던 두꺼비 집도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 보았다. 두꺼비 집 양쪽에서 서로 손을 디밀어 손주들과 터널 안으로 서로 디민 손을 잡고 깔깔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바닷물에 내 몸을 적셨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손주들과 함께 놀아주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날에 비해 파도가 조금 거칠어서 물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파도를 피해 팔짝팔짝 뛰기도 하고 모래밭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다. 그 단순하고 유치한 놀음도 손주들은 순수하게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손자 Desi를 파도에 닿지 않도록 번쩍 들어 올리기도 했는데 얼마나 신이 났던지 Desi의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처럼 그칠 줄 몰랐다.

그런데 Desi보다 두 살 위인 손녀 Sadie를 들려고 하는데 Sadie는 내 근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랐음을 바로 깨달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들어 올릴 수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내 근력의 범주를 벗어나 것이었다. 나는 한 살 만큼 노쇠해졌고, Sadie는 한 살이라는 시간보다도 더 성장해버린 것이다. 아마 내년이면 손자를 들어 올리는 일도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서 서로 엇갈려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다. 지금이 한 해 전이었더라면 나는 Sadie도 내 머리 위까지 번쩍 들어 올리며 서로 즐거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손주와 할아버지 사이의 시간은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더 엇갈리며 흘러갈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젖어 있는데 파도에 옛 기억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리 바빴던지 나는 내 다섯 아이를 바닷가에서 제대로 한 번씩 번쩍번쩍 하늘 높이 들어 올려주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물론 이민살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조금만 덜어내 아이들에게 주었다면 지나간 시간 때문에 이리 아프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을. 그런 회한의 마음이 자꾸 파도와 함께 내 마음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러나 무엇을 하는 데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놓아버린 시간은 물거품처럼 이미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지난 시간을 후회하기보다는 행복한 한 점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마음을 다 모아서 아이들을 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일 것이다. “높이 들어 올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할 게.” 그리고 마음으로 아이들을 번쩍 들어 올릴 것이다. 그리고 당장 우리 식구 페북에 아이들에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한다고 고백할 것이다. 지금이 사랑을 고백할 가장 좋은 순간이기에.


김학선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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