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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을 떠나는 딸에게

안경을 쓴 하얀 얼굴의 카에데짱.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던 너에게 어린이집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마음 따뜻한 아이였지. 금세 둘은 어린이집에서 유명한 단짝이 되었더구나.

실은 너를 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알게 모르게 가슴을 졸인 적이 많았다. 한국 아이라고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살폈어.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라 불릴 만큼 두 나라 분위기가 좋지 않았으니, 엄마의 몸가짐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야. 물론 걱정과 달리 아무 탈 없이 어린이집을 졸업했고, 네가 한국으로 떠날 때 친구들 모두 동네 공원에 모여 “꼭 다시 만나자”며 아쉬움을 달랬던 것, 너도 기억하고 있겠지.

하지만 문득 걱정이 떠오를 때가 있단다. 언젠가 카에데짱은 혐한 뉴스를 접하게 될 테고, 너 역시 반일을 부추기는 행태를 맞닥뜨리겠지. 몇 년 후 어느 여름방학에 만나 “독도를 왜 빼앗으려고 하니” “다케시마를 왜 너희 땅이라고 우기니”라며 다투다 서로 등을 돌리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말야.

어디 이뿐이겠니. 2월엔 다케시마의 날, 3월엔 3·1절과 초·중·고 교과서 검정, 8월엔 광복절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외교청서와 방위백서 발표 등 1년 내내 서로 긴장할 일이 많기도 하지. 여기에 강제징용 판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수출규제 조치, GSOMIA(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논쟁까지. 바야흐로 한·일관계는 “장기적인 저강도 복합 갈등의 시대를 맞았다”는 서울대 남기정 교수의 분석에 동의할 수밖에 없구나. 해결하기 쉽지 않은 다양한 갈등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됐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한·일 관계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지난 4년을 돌아보면, 거듭된 갈등 속에서도 분명히 크고 작은 기회는 있었는데, 제대로 찬스로 살리지 못한 게 아쉽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오부치 전 총리 같은 뜻이 맞는 리더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해.

문화의 힘은 유일한 희망이야. 한국 음악과 드라마·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혐한이 자리 잡을 틈이 없더구나. 2000년대 한국에 확산된 일본 문화를 통해 화해의 기운이 자리 잡았듯, 끊임없는 교류는 관계 개선에 큰 힘이 될 거라 믿어. 물론 근본적으로 정치·외교적 노력은 어른들이 계속해 나가야 할 책임이자 의무이지.

긴즈기라는 일본의 전통공예엔 깊은 뜻이 있어. 그릇의 부서진 부분에 금가루를 칠해서 원래 그릇보다 훨씬 멋진 그릇으로 재탄생하는 거란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긴즈기처럼 더 빛나고 돈독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기를, 그래서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땐 가깝지만 먼 나라가 아니라 사이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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