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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또 하루가 열리고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말자. 많은 것을 담으면 본질은 점점 희미해진다. 후에 담은 것들을 빼내는 것이 더 어려운 경우를 종종 본다. 삶도 그렇다.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하면 할수록 나로 살아가는 강렬함은 사라진다. 사랑도 그렇고, 용서도 그렇다. 간절함을 담은 시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도 용서도 그 의미가 뭉틀그려진다.

또 하루가 열리고 어김없는 일상의 시간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온 시간을 다 털어봐도 내겐 한가지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 밖엔 없다. 간절했던 시간을 뒤돌아 본다. 지금 그 시간은 내 앞에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눈을 감는다. 그 간절했던 시간 속으로 나는 걸어 들어가고 있다. 그 시간은 내 어깨에 살포시 와 앉는다.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손의 촉감으로 다가 온다. 슬픔을 이겨내는 순간 시간은 내 앞에 아련한 편안함으로 온다. 무엇으로도 바꿀수록 없는 촉촉한 향기로 온다. 풀벌레소리 조차, 바람소리 조차, 새소리 조차, 다만 흔들리는 들풀의 간간한 부딪치는 소리조차... 나를 다스리는 소리로 온다. 시간이 영화의 필름처럼 지나간다. 내일도 이 자리에 앉아 이같이 소중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갈 인생이 아니더냐. 내면의 고요가 이슬비처럼 내리며 내 앞을 스쳐 지나 간다. 그 순간의 일부를 마음에 담고 있다. 한 줄의 간절함을 글로 남기는 행운이 내게 온다면 난 내가 만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그 순간을 나누고 싶다. 그 행복을 나른한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다. 무엇으로도 어떠한 것으로도 바꾸지 않겠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시간의 풍경과 오래 오래 숨쉬며 내 눈 속, 아무도 모르는 작은 우주에 담아내고 싶다.

잘 빚어낸 도자기일 지라도 어디에서, 어떤 열량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견디어 내느냐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우린 잘 깨어지는 도자기같이 위태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 놀라고, 변화와 적응에도 한계를 느낀다. 이럴 때마다 나에게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그래, 견디어 내는 일이야. 참아내는 일이지. 그리고 내 안에서 스스로 적응되어가는 일이지. 매일 작은 기쁨으로 채워져 가는 일이지. 단단해진다는 것은 결국 견디며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선물이지.” 가만히 보고 있자면 기특하고 귀한 들꽃 한 송이에도 그 스쳐가는 바람이며, 따뜻이 묻어나는 햇살이며, 촉촉한 이슬 한 방울이 품어있지. 자랑하지도 욕심내지도 않는 작은 들꽃은 보는 이 없고 찾는 사람 없어도 꽃피우는 일에 만족하고 마침내 씨앗으로 죽어, 핀 자리 주변으로 자신을 떨구어내는 일상의 일에 충실한 들꽃이다. 참으로 단순한 들꽃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못해 숭고 하기까지 하다.

인생도 다르지 않더라. 단순하게 살아가는 자연의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애써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하지 않아도 행복은 내 앞에 어느새 다가와 있는 것이다. (시인, 화가)



또 하루가 열리고

하얀 도화지
손도 없고 물감도 없는데
시간이 그림을 그립니다
하루가 그려집니다
파란 하늘 희망 한 줄 길게
연두 초록 생명 파릇이 피고
노랑 보라 붉은 꽃봉오리
신비한 생명 태어나는
하루가 눈물겹습니다

파란 하늘을 향해
푸른 소나무 그 키를 키우고
이팜나무 하얀 꽃잎
눈처럼 내려와 쌓이는데
외줄 곡예 시선을 이으며
하얀 도화지 위로
시간이 그림을 그립니다
어느날 기도처럼
하루가 눈물겹습니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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