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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짬짜미와 생존전략

값은 싸지 않았다.

LA한인타운 내 한 이사업체는 7월1일부터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이전에 작업자 3명을 부르면 시간당 120달러였는데 이젠 150달러를 달라고 했다.

30달러만 더 주면 되는 게 아니다. 이사를 1시간 만에 마쳐도 무조건 3시간 요금을 내야 한다. ‘기본요금’이란다.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선 실제로 30달러가 아니라 최소 90달러가 오른 셈이다.

다른 2~3개 업체에 문의했다. 더 저렴한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 가격이 똑같았다. 왜 가격이 다 같으냐고 한 업주에게 물었더니 조심스럽게 “협회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으면서 물음표가 솟아났다. 이삿짐 협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거니와 ‘이래도 되나’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장 ‘가격 담합’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랐다.

동종 업체들이 이익을 높이면서 소비자는 잃지 않으려 사용하는 수법이다. 속칭 ‘짬짜미’라고도 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남들 모르게 일부 기관, 조직, 기업이 자기들끼리 하는 부정적인 약속’.

문장에서 핵심 단어는 ‘부정적인’이다. 이삿짐 업체의 약속이 부정적인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먼저 그 ‘약속을 한 업체들’이 궁금했다.

LA한인타운에서 30년 이상 운영해 왔다는 한 업체에 문의했다. 업주는 친절했다.

이삿짐 협회가 있느냐고 했더니 정식 협회가 있진 않다고 했다. 다만 몇몇 큰 업체들이 서로 연락해서 가격을 함께 올리기로 한 건 맞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타인종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인 업체의 생존전략이라고도 했다.

그가 설명한 가격 인상 이유를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다. ①7월1일부터 최저임금이 15달러로 올랐다 ②개스비도 작년보다 갤런당 1달러 이상 올랐다. 워컴, 자동차 보험료도 올랐다 ④그동안 없던 정부 수수료가 새로 생겼다.

특히 인건비와 관련해 업주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삿짐 업계에서는 최저임금보다 시급을 더 줘야 한다고 했다. 15달러로 오르면 20달러는 줘야 작업자들을 고용할 수 있단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설명을 종합하면 업체 운영비가 작년보다 25~30% 정도 더 많이 들고 직원 구하기도 어려우니 비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함께 가격을 올리기로 한 것은 한 업체만 올리면 서로 제살 뜯어먹기 경쟁이 될 것이 뻔하니 상생하자는 약속이었다고 했다.

쭉 듣고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이사업체만 가격을 올린 게 아니다. 지금 LA한인타운에서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설렁탕 한 그릇 사먹기가 겁난다. 최근 몇년 사이 갑자기 올라 16달러대다.

가격 인상의 이유는 업종과 상관없이 대동소이하다. ‘인건비, 재료비, 개스비 등등 다 올랐으니 땅 파서 장사하는것도 아니고….’

소비자들도 다들 뉴스를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업주들이 이해 못하는 게 있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라 가격의 인상폭이 불편하다.

30여년간 장사해온 타운의 유명 설렁탕 전문점을 예로 들자. 이 식당의 설렁탕 가격은 5년 전 8.99달러에서 현재 15.50달러다. 7달러가 올랐으니 5년만에 72%가 뛴 셈이다.

그나마 설렁탕은 값싼 설렁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삿짐 업체는 소비자들에게 더 무리한 걸 요구하고 있다. 비록 담합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라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선택을 잃어버렸다. 비용이 저렴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가격이 모두 같아서다. 어디에 문의해도 똑같은 비용이라면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존재할 수 없다.

인터뷰했던 업주는 “그래도 이 정도면 싼 편입니다”고 했다. 싸다는 말은 상대 비교할 때나 의미가 있다.

값은 싸지 않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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