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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킴보장학금 수여

본보 15명에 킴보장학금 수여
2000달러씩 총 3만 달러 전달
“꿈·이상 펼치며 헌신” 당부

6일 워싱턴중앙일보 3층 문화센터에서 킴보장학금 수여학생과 학부모가 장학금 2000달러 체크와 상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라헬 김 기자]

6일 워싱턴중앙일보 3층 문화센터에서 킴보장학금 수여학생과 학부모가 장학금 2000달러 체크와 상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라헬 김 기자]

중앙일보가 주관하고 해피빌리지, 킴보장학재단이 후원하는 킴보장학금 수여식을 6일 본보 3층 문화센터에서 개최하고, 워싱턴지역 등 15명의 장학생에게 장학금 2000달러 체크와 상장을 전달했다.

이날 조지타운대에 진학하는 조이스 최 학생을 비롯해 코넬대에 합격한 로렌 예린 장, 버지니아대에 진학하는 크리스토퍼 김, 밴더빌트에서 공부하는 그레이스 김, 메릴랜드대 김경호, 조지메이슨대 니콜라스 신 학생 등이 장학금을 받았다.

김영천 본보 발행인은 “킴보 장학생들이 꿈과 이상을 펼치고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해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한인의 자부심을 드높이고, 대한민국에도 헌신하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본보에 감사하다며 “한인 학생의 자긍심을 갖고 사회가 필요로하는 인재가 되도록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 전역에서 총 217명에게 43만4000달러를 수여하기 위한 ‘제34회 킴보장학생 선발’은 김건영 장로가 한인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금을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1987년 킴보장학재단을 만들고 1988년 5000달러를 시작으로, 해마다 올려 지급했다.

고 김 장로는 1950년대 말 미국 유학을 왔지만 학비 때문에 공부를 중단해야했다. 그 한(恨)은 평생 가슴속에 남게 됐다. 고생 끝에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상소 사장이 된 뒤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루기 위해 1987년 사재 180만 달러를 털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장학사업에 열성인 것은 유학시절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교육자 길을 포기한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다고 한다.

김 장로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사범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동기로는 재학 중에 육사로 간 김종필 전 총리, 이휘호 여사 등이 있다. 김건영 장로는 대전 인덕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1956년 절친한 대학동기생 김찬삼과 샌프란시스코로 떠나왔다. 고 김찬삼 교수와 LA까지 접시닦기 원정을 다녀오던 시절, 시간당 65전을 받았다. 그 시절 한인감리교회에 다녔는데, 자신도 살아가기 힘들면서 남을 돕는 양주은 할아버지를 보면서 자신도 선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김 장로는 미8군 군복무 할 때 사진을 담당한 경험을 살려 코닥 컬러 랩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사진 인쇄업의 길에 들어섰다. 1964년 킴보 컬러 랩을 설립했다. 그의 색깔에 대한 천부적인 센스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라고 한다.

그는 50년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는 동안 한국에 나간 적이 없다. 뮤지컬 지저스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는 지속해서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그러곤 돕고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고, 그런 일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모범도 보인 것이다.


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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