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박사-스티브 조 길따라 바람따라] 뜻있는 한인 이민 역사 탐방
리들리(Reedley)
![중가주 리들리에 있는 독립문 모형. [삼호관광 제공]](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originals/2021/11/03/201853862.jpg)
중가주 리들리에 있는 독립문 모형. [삼호관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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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리들리는 하얀색, 핑크색, 연분홍의 여러 과수의 꽃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인구 2만200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농업의 도시다. 예전에는 농업에 종사한 많은 한인이 거주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한인이 10여명 밖에 살지 않는다. 이 조그마한 도시에 한국에 있는 독립문의 1/4 정도(4.26M) 축소된 독립문이 지난 2010년 11월에 세워졌다.
이 독립문 앞 작은 광장에는 조국을 위해 먼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10명의 애국지사의 기념비가 두 줄로 서 있다. 이승만, 안창호, 윤병구, 이재수, 김종림, 김호, 한시대, 김형순, 송철, 김용중 등 그들의 비석 앞뒤에는 사진과 더불어 그들의 애국 활동 기록들이 영문과 한글로 새겨져 있다.
그들 중에 통영 출신인 김형순(1886-1977)은 1903년 최초의 하와이 한국 이민 통역관으로 도미한 후 1916년에 리들리로 왔다. 그리고 부인 김덕세의 이화 학당 은사인 김호(1883-1968) 선생을 초빙해 함께 김형제 상회(Kim Brothers Inc)라는 과일 묘목 도매상을 운영했다. 김형제 상회는 과일 도매상을 시작하면서 최초로 털 없는 복숭아를 개발, 특허를 내 천도복숭아(Nectarine)와 2차 세계 대전시 과일을 군에 납품하면서 한인으로는 최초로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한다.
김형순과 한인 농업 이주자는 과수 도매의 수익금을 일본에 나라를 뺏긴 조국을 위해 독립자금을 모아 보내준다. 그 당시 리들리에서 보내주었던 독립운동 자금이 무려 20만불(현 가치 1500만불 정도)로 그들의 땀과 정성어린 지원이 조국의 독립에 큰 보탬이 되었으리라 본다.
이 한인 이민 역사의 현장에 가면 그 당시 거주했던 이민 선조 170여명이 리들리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아울러 방문 장소로 이승만 박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숙박했던 버지스 호텔과 한인 장로 교회, 김형순 자택지를 돌아볼 수 있다. 또 인근에 있는 리들리 뮤지엄에 가면 1920년 일본과 싸울 한인 전투 비행사 양성소 설립 등 리들리 한인 초기 이민 역사 현장 발자취들을 볼 수 있다.
타국의 다양한 관광지와 미국의 자연적인 여행지도 좋지만, 우리의 한인 이민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리들리는 그야말로 뜻깊은 역사 탐방 여행지다.
<삼호관광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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