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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두 얼굴의 남편들

남편을 잘 만나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친척 언니가 있었다. 남편이 인물이 출중한데다 능력도 좋아 대기업에 다니며 출세도 남보다 빨랐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집안의 어르신 생일이나 아이들 돌잔치 등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호텔이나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잔치를 열었다.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어른은 어른들끼리,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커다란 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겼다. 그럴 때 보면 그는 언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음식을 집어다가 앞접시에 놓아주는 등 이만저만 자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언니가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편이 지극 정성으로 병 간호를 한다는 칭찬도 자자했다. 남편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그 언니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 가서 조문할 때였다. 그는 문상 온 친척들에게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재혼도 안 하고 엄마를 잃은 자녀들을 돌보며 혼자 살 거라고 해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후 그 언니의 친 여동생에게서 그간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형부는 남들 보는 데서는 언니에게 잘하는 척했지만 모두 다 ‘쇼’였다고 했다. 사실은 형부가 결혼생활 내내 언니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어 위암에 걸렸고, 병으로 고생하는 언니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났고, 그걸 언니가 다 알면서도 참고 살았다며 울먹였다.



또 언니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 해외로 신혼여행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완전히 이중적이었다며 치를 떨었다. 믿기지 않았다. 하긴 모범적인 부부의 전형으로 보였던 빌 게이츠 부부도 갈라서기 전까진 애정 없는 쇼윈도 부부였다 하니 부부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지난해 5월 초에 콜로라도주 인구 2만여명의 소도시에 사는 한 여성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기사에 따르면 모퓨(53)라는 남자의 아내 수잔(49)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그 길로 실종됐다고 한다. 남편은 눈물을 글썽이며 동영상을 통해 “수잔. 당신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뭐든 하겠소.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오. 그들이 얼마를 요구하더라도 다 줄 것이오. 여보, 사랑하오. 제발 살아만 있어 주오”라고 절규했다. 그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이 실종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작은 도시를 뜨겁게 달구었으나 일년이 지나도록 범인을 잡지 못했다. 현지 경찰뿐만 아니라 콜로라도주 수사당국, 연방수사국(FBI)까지 수사에 가세했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그렇게 미궁으로 빠지는 가 싶었는데 얼마 전 그가 고용한 인부의 증언에 의해서 남편이 범인으로 밝혀졌다.

눈물을 흘리며 제발 살아서 나와 아이들에게 돌아와 달라고 울부짖던 남편이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 도시가 충격에 빠졌다. 남편의 간교한 언론 플레이에 모두가 속은 것이다.

금년도 어느새 7월 중순으로 접어 들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우리가 젊었을 땐 한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주는 피서법으로 공포 영화나 납량특집 드라마,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여고괴담 등이 있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그런 계열의 소설 ‘레베카’가 있다.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어 더 유명해졌다. 새삼 몇 십 년 전에 읽은 책을 떠올린 것은 위에서 말한 실종사건이 ‘레베카’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레베카는 소설의 제목이자 이미 사망했지만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가난하고 평범하나 순진한 처녀다. 여행지에서 맥심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맥심은 아내와 사별한 후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부유한 귀족이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후 맥심의 대저택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나는 그곳서 무엇인가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저택 안에는 여기도 레베카 저기도 레베카, 세상을 떠난 맥심의 전부인 레베카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나는 압도적인 레베카의 존재감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린다. 특히 하인들의 우두머리인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에 대한 이상한 집착으로 나를 노이로제 상태로 몰아간다. 나는 부인을 잃은 남편을 위로해 주고 싶지만 그는 죽은 부인을 너무 사랑했는지 전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베카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우연히 맥심의 저택 인근 바다 속에서 요트가 발견되어 끌어 올렸는데 놀랍게도 장사까지 치른 레베카의 시신이 쇠사슬에 묶인 채 따라 나왔다. 사실은 맥심이 레베카와 말다툼하다가 홧김에 총으로 쏴 죽이고 그녀의 시신을 요트에 실어 바다에 수장시킨 것이다. 레베카, 레베카 하며 아내를 못 잊어 하던 맥심은 아내를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했던 것이다. 극적인 반전으로 완전 범죄는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등 돌리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부부사이라고 하더니 양의 탈을 쓴 악마가 따로 없다. 그들 남편들이 흘린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다. 부부는 너무 가까운 나머지 무촌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생연분이 평생 원수가 되는 사이이기도 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자나 깨나 남편 조심, 착한 남편도 다시 보자.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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