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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여름 나기

어느 사이 한여름이 옆에 자리 잡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내고 있다. 무더위로 타오르는 이 대책 없는 계절의 열기를 어떻게 다스려 볼까 여름마다 맞이하는 우리들의 숙제다. 사람들이 언제나 말하듯 올여름이 제일 덥다는, 정말 그런지는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찜통을 견디어 내어야 그것은 물러갈 것이고 또 우리는 어느 때인가 가을의 문턱에서 서늘한 바람을 고마워 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의 무더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사계절이 변함없이 찾아드는 곳을 사는 이들이다. 〔〈【따뜻하고 덥고 서늘하고 추운 바람이 잠시 잠시 머물다 가는 동네의 주민들이다. 】〉〕늘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위는 어쨌든 함께 가야 하는 365일 친구다. 늘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찬바람은 언제나 옆에 있는 동행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친구가 아니고 더위와 추위는 평생을 같이 가는 가족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계절을 산다는 것은 늘 변하는 온도의 바람을 늘 새롭게 만나는 일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더운 바람의 계절을 탈 없이 지내고 향기 짙은 가을을 만나고 싶은 것이 또 한 번의 사계절을 살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서 오랜 세월 이어온 삶의 지혜가 동원된다. 더위는 더위로 맞서자는 생각으로 뜨거운 음식을 마주하고 따가운 백사장에 벗은 몸으로 나선다. 더운 바람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피하는 단순한 방법이 우선 떠오른다. 차가운 계곡물과 녹음이 만드는 그늘에 찾아드는 것은 오래된 피서의 고전이다. 함께 등장하는 것이 차가운 음식과 부채와 바람 잘 통하는 정자나무 아래와 대청마루 위에서의 낮잠이 구색을 갖춘다. 때로는 땀 흘리며 일을 하거나 산에 오르기를 하고 맞이하는 시원한 한 줌의 바람과 한 그릇 냉수가 여름의 맛을 내기도 한다.

옛날에는 한여름 복판에서 임금이 석빙고 얼음을 가져와 신하들에게 한 덩어리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무더위 속에 그 한 조각 얼음이 여름나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성은에 감복한 마음이 더위를 이기는 힘이 되었을 것 같다. 마음먹게 달렸더라는 말처럼 마음의 모양이 어떠한가에 따라 밖에서 오는 더위 추위 등 달려드는 어려움의 온도가 달라진다. 늘 오늘이 제일 덥다는 마음보다는 이 열기가 오곡백과를 자라게 하는 고마운 것이라고 하며 즐거워하는 마음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도 겨울이 춥지 않으면 다음 해 농사는 늘어난 병충해에 어려움을 겪고 여름이 덥지 않으면 곡식이나 과일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 부실한 결과를 가져온다. 여름나기에 달아나거나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 여름을 이기는 마음을 단단하게 가지는 것이 현명한 마음가짐이 될 것 같다.

인생을 사계절로 구분하여 묘사하는 글이 많다. 여름은 젊은 시절을 나타낸다. 젊은 시절은 모든 사람이 평생을 보내고 난 후 공통으로 그리워하는 시절이다. 정작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한듯하고 세상에 대하여 불평도 크고 지혜도 모자라 길 위에서 방황하거나 실수도 끊임없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가는 힘이 솟는 때이다. 그때 만들어진 삶의 틀 위에 우리는 나머지 계절의 완성을 만들어 간다. 여름은 사랑해야 할 계절이다. 사계절 중에서 여름은 크게 성장하고 일 년의 농사가 만들어지는 귀중한 시간이다. 여름나기가 괴로움보다는 그때 자라나고 그때 열매를 만들고 그때 또 하나 나이테를 넉넉하게 그려내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여름을 사랑하고 여름과 같이하면 그 여름은 즐거웠던 여름나기를 품는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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