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아래서] 미안해요 하나님
정말 한글 같은데 알고 보니 한자인 말들이 있다. 동생(同生)이나 총각(總角)은 물론이고 호랑이((虎狼) 배추(白菜 )에 이르기까지 고유한 한글인 줄 알고 썼던 말들이 한자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짐짓 놀랄 때가 있다. 그중에 미안(未安)이 있다. 영어로는 'Sorry' 쯤에 해당하는 말이다.이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생각지 않던 뜻이다. 평안하지 않다. 그래서 남을 평안하지 못하게 했기에 사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말의 뜻은 내가 평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득 이게 무슨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지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이 어떻게 사과가 될 수 있는가. 오히려 듣는 사람 염장을 지르는 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아랫사람에게 잘못해 놓고 '미안'하면서 별일 아니듯 넘어가는 사람을 보면 속이 부글거리는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해 보였던 이 표현이 참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 날이 있었다. 미국 친구들이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I'm so sorry"라고 하는 말을 들었던 때였다. 직역하면 "정말 미안해"가 되는데 어색하기 그지없다. 실은 "내 마음도 정말 아프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미안하다는 말은 "당신이 아프고 평안하지 않듯이 나도 아프고 평안하지 않다"라는 말이었다. 공감이었다. 죄송하거나 잘못했다는 말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었기에 그 사실을 인정하고 보상하겠다는 태도이다. 그런데 가끔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데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찌어찌 해결되고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았다. "진정성이 없어 보여서"란다. 하기는 상대가 내 사과를 안 받아주면 아니 사과까지 했는데 어떻게 안 받아주냐고 오히려 화가 더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지 않던가.
이런 사과는 내 잘못을 인정하겠다는 말은 될지 몰라도 당신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느끼기에 나도 평안하지 않다는 미안은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성은 공감에서 온다.
우리 사이에서도 이러할진대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한다고 하면서 그저 죄와 잘못만을 나열한다면 과연 우리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아픈 분노를 미안해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원한다. 애석하게도 그래서 회개하고 부르짖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내 회개가 초점이 될 수 없다. 다 밀어놓고 죄를 아파하시는 하나님께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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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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