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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1세기 구멍가게 포비아

노트북을 챙겨 근처 카페로 가는 중에 말끔하게 꾸며진 상점을 보았습니다. 카페와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결합된 듯한 간판에 24시간 영업을 한다 쓰여 있기에 다가가 보니 큰 창으로 시원하게 안이 훤히 보이는 매장 안에는 손님들만 있을 뿐 점원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들어선 공간에는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와 음료수를 만들어주고 한쪽 벽에는 커다란 냉장고 같은 자동판매기에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주거단지 한가운데 자리잡은 이 기묘한 상점을 신기해하며 들르는 아이와 부모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채 열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신용카드를 받아 주저함 없이 무언가를 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21세기가 온 느낌입니다.

아직 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인 일곱살, 아버지의 생신 선물로 제가 산 것은 웨하스 한 봉지였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과 선물로 드리면 함께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결합된 그 행위는 여섯살 많은 누나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집 앞의 구멍가게에서 무언가를 혼자 사는 것은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난 다음에도 한 참 후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거래는 그와 내가 대등한 입장이어야 할 것 같아 체구도 작고 쭈뼛거리는 심약함으로 물건을 고르고 지불하는 행위가 무척이나 낯설었습니다.

만약 그 시절 로봇이 도와주는 무인 상점이 있었다면 저도 용기를 낼 필요 없이 씩씩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누이가 많은 집의 막내로 자라 이것저것 도움을 받다보니 혼자서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신 어머니는 은행에 가서 간단한 일을 처리하도록 제게 시키시고 뒤에서 지켜보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껴졌지만 막상 해보고 나면 별것 아님을 알게된 후 왜 그토록 주저했을까 의아함까지 들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저의 작은 아이와 병원에 함께 가서 똑같은 경험을 시켜주며 그때 어머니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은행의 기억이 떠오르며 그때 로봇 상점이 있었다 해도 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을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삭한 웨하스를 사는 것 말고도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 모두를 무인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일로 만나는 사람과 공부하고 협력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속 문제에는 사람이 함께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드물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 이 깨달음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어야겠습니다. 로봇과 메타버스가 몰려온다 해도 관계를 무인화하거나 자동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그 사실이 불편함이 아니라 함께 생존해 온 우리 종(種)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로봇 상점에 앉아있는 동안 발견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젊은 부모와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들어오는 반면, 동네에 많이 살고 계신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들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세련되고 효율적인 이 공간은 왠지 두렵고 살갑지 않은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습니다. 일곱살의 저에게 두려웠던 구멍가게가 일흔살의 그분들에겐 로봇상점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석양이 저물기 시작하는 지금의 하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드신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로봇에게 음료수를 주문하는 것을 가르쳐 드리고 한 발 뒤에서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해야겠습니다. 두려움은 아이만 가진 감정이 아닌 것을 알아버린 저는 이제서야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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