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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진돗개 호순이(하)

그렇게 무서운 애비를 혼내던 호비가 결국 지 성질을 못 이겨 농장으로 갔는데 농장 주인에 의하면 밥 먹을 때만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고 산속을 온종일 돌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 세월이 지난 몇 년 후 하루는 동문들 가족 야유회가 있어 여름철에 그 농장을 이용하였습니다. 사과밭, 배밭, 송어 양식장, 잔디 축구장, 놀이 시설도 있어 놀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호비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만난 지 몇 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주인에 의하면 호비는 그 동안 사람을 꺼리며 지내 왔다고 하여 반갑지만 멀찍이 떨어져 혹시 나를 알까 하고 부르며 아는 체를 했더니 처음에는 슬슬 피하다가 나중에는 가까이 오더니 만져도 가만 있더라구요. 그래도 그전 같이 매달리고 그러는 게 없어 너무 낯설어져서 그런 갚다 했지요.

저녁 무렵 야유회가 끝나고 각자 차를 타고 농장 문밖을 나가는데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해 거울을 봤더니 맙소사! 호비가 내 차를 마구 따라 오는 겁니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한참 가면 지쳐 돌아가겠지 했더니 아이고 맙소사 이건 죽기 살기로 쫒아 오는데 그만 핸들을 꺾어 농장으로 다시 돌아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농장 주인의 말에 의하면 호비가 이제는 며칠에 한번씩 집에 들리더니 언제부터 인가는 아예 종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완전 들개로 변했다는군요. 한참 괴로웠지요.
그 동생 호순이하고는 이제 10년을 넘게 같이 살아 왔군요. 호순이도 핏줄은 못 속이는 지라 동네 세퍼트고 불독이고 뭐고, 유명한 싸움개 핏불도 물어 뜯어 동네에서 원망도 많이 들었으며 집 근처 토끼와 사슴들에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하루는 청둥오리까지 잡아 젊음을 과시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래서 너무 정열이 뻗쳐 그런가 숫놈에게 일주일간 시집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 숫놈마저 사정없이 물어 뜯어 소박 맞고 와서는 다시는 시집 보낼 생각을 안하고 이렇게 같이 늙어 버렸습니다.



애비인 진돌이는 가끔 놀러옵니다. 그런데 진돌이는 마당에서 키워 날씬한데, 우리 호순이는 집안에서 키워 작은 돼지처럼 뚱뚱합니다. 둘이서 이제는 안 싸우지요. 진돌이가 항상 져주니까요. 금년도 크리스마스에는 호비년도 어디서 갑자기 같이 나타나 뒷마당에서, 그전처럼 검은 청년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아는 Korean Town 아저씨들과 바베큐를 뜯으면서 맥주 파티를 하였으면 합니다.

어느 진화론자가 개는 태초부터 인류와 가장 친한 동물로 진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돗개는 원래 숙명적으로 주인에게만 절대 충성 할 수밖에 없는 어떤 관련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저런 지난 봄 어느 날 호순이가 갑자기 거실에서 천수를 다하고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향년 12살 반인데 인간으로 치면 90살이지요. 커다란 호순이 초상화는 그냥 그 거실에 아직도 덜렁 걸려 있습니다. 호순아! 안녕.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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