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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해를 따라가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Toni Morrison은 생전 인터뷰에서 그의 하루는 대체로 “해를 따라간다”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나이가 80이 넘어 요양원에서 지낸 그의 일과를 말한 것 같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낮에 산책하고, 비가 오면 실내에서 지내고, 해가 져 어두워지면 잠자리를 찾는 노인의 하루가 짐작된다. 나도, 나이는 그녀보다 많이 적지만, 대체로 해를 따라 움직인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요즘은 5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뜨인다. 책상에 앉아 창문을 열고 건너편 높은 나무를 바라본다. 부지런한 새들이 지저귀고, 나무는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나는 책은 낮에 읽는다. 전등불 밑에서 보면 빨리 눈이 피곤해진다. 나이에 비해 시력이 좋아 밝은 날, 차 안에서도 안경 없이 읽을 수 있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 초저녁잠을 즐긴 후 밤중에 잠깐 일어나 스포츠 소식, 인터넷 뉴스를 체크한다.

남미의 에과도르(Ecuador)는 적도(Equator)에서 아주 가깝다. 나라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적도가 지나는 나라에서는 밤낮의 길이가 일 년 내내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낮이 14분 길다) 사람들은 해를 보면 하루가 얼마나 지났는지 쉽게 짐작이 가능해 시계에 덜 의존하게 된다. 항상 더운 곳이니 농사철을 말해주는 월력도 다른 나라보다 의미가 줄어든다.

해는 우주의 중심, 지구를 비롯한 별들은 해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태양은 거대한 불덩이, 수억 년이 되었는데도 식지 않고 있다. 지구는 해와 가까워지면 뜨겁고, 멀어지면 차가워진다. 이글거리는 해를 미워하는 사람들, 싸늘하게 식은 해를 바라보며 어서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상 만물은 ‘해바라기’이다.

늦가을, 산책로에서 보았다. 해는 점점 높아져 기운이 쇠잔했다. 해바라기는 까만 씨를 남기고 시들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바닷가 공원, 내 차를 찾았다. 그곳에도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노인들이 바람을 피해 담벼락 아래서 해를 바라보며 남아 있는 온기를 즐기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담요로 몸을 감고, 태양신을 경외하는 것 같았다. 나도 차 안에서 가슴 저리는 서정시를 읽고, 주먹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산책로의 해바라기 꽃은 다음 해, 그다음 해에도 필 것이다. 공원의 해바라기는 지면 다시 피지 못 할 것이다. 같은 곳에서 다른 꽃이 필 것이다. 해는 사람을 지배한다.



더운 지방 사람들은 대체로 게으르고 그 나라는 문명이 덜 발달하고 있다. 늘 추운 지역 사람들은 우울해 지고 술을 많이 마시고 정신질환이 많다. 우리가 사는, 사계절이 있는 곳은 자극이 많아 정신이 맑아진다. 내 주변에는 해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이 오면 철새처럼 남쪽을 찾아가고 여름이 오면 덜 더운 북쪽으로 다시 날아온다.

지난 며칠 동안 해는 90도 폭염으로 형벌을 가했다. 간밤의 천둥·번개는 지구의 저항이다. 해도 메시지를 받았는지 오늘은 덜 더울 것 같다. 이른 아침 창밖을 내다본다. 검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고, 높은 나무들이 가만히 서서 주일 아침기도를 드리고 있다. O Sole Mio, 오! 나의 태양. 폭풍우 지난 후, 공기는 상쾌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또 다른 나의 태양, 해가 지면 우울해지고 나는 당신의 창가에 머무른다. 오늘도 해를 따라 움직일 것이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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