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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신의를 지키는 마음

팬데믹으로 세탁소도 큰 타격을 입었다. 우리 가게 주위 몇 개 세탁소들이 문을 닫았다. 빨래를 가져다 세탁해주던 세탁소가 문을 닫으면서 가게 운영이 어려웠다.

마침 소개를 받은 사람이 호세다. 빨래를 빨고 다림질도 하고 얼룩도 제거하는 만능 세탁인이다. 팬데믹 직전에 오래된 가게를 인수했다. 오랫동안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경영 수업도 받았다. 아무도 우리 가게 옷을 빨아줄 곳이 없었는데 얼마나 잘된 일인가. 한인 보다 기술과 서비스가 부족하고 엉성했지만 손님들도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며 불평이 없었다.

그런데 날씨도 더워지고 낡은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 고치고 나면 며칠 후에는 빨래 머신이 고장이다. 웬만한 고장은 호세가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어 크게 고생을 하지 않았다. 호세가 고칠 수 있는 기준을 넘으면 문제였다. 급하게 맡긴 옷들을 찾아갈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가게에 옷을 찾으러 손님이 오면 가슴부터 뛴다. 오후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호세는 무소식이다. 내일 아니 모레 했더니 손님들이 방방 뛴다. 그렇게 급하게 입을 옷들을 왜 하필 이때 가져와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전화가 울리고 큰소리 날 때마다 낮은 목소리로 미안하다. 기계 고장으로 옷이 준비가 어려우니 내가 전화할 때까지 기다려 주면 세탁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달랬다. 이 한마디에 전화통이 조용해졌다.

물론 손님들은 자기 옷을 잃어버렸거나 잘못되어 그런 줄 알고 야무지게 다그친다. 우리도 가끔 약속 이행이 불발하면 좋지 않은 생각을 한다. 좋은 면으로 이해해 주면 서로 마음 상하지 않는데 날씨까지 90도가 넘으니 짜증이 난다.

자주 기계 고장과 배달 날짜를 어기고 속도가 느리지만 호세는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비즈니스니까 하면서 팬데믹 전에 빨래를 해주던 세탁소에 전화했다. 일찍 문을 닫았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튿날 호세가 일 주일분 옷을 다 빨아서 가지고 왔다.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다행히 어제 전화를 안 받은 세탁소가 고마웠다.

내가 어려웠을 때 도와준 호세를 조금 불편했다고 내치면 호세에 대한 배반이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도의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나무랐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이익이다. 내가 이익이 되면 그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진다. 더 적극적이고 상냥한 웃음도 내비치고 감사함을 자주 표현한다. 한마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내가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대충 대하거나 무심해진다. 그리고 내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이나 미운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손해나 스트레스를 앙갚음하려 한다.

물론 모든 관계가 이익과 손해 관계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다. 그 관계로만 이루어졌다면 이 세상은 악마의 소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들의 가슴 속엔 사랑과 배려라는 따뜻한 감성이 남아 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고 삶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일을 행하는 것이 참으로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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