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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익한 ‘점령군’ 논쟁

지난달 21일 김원웅 광복회장이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 보낸 역사교육 영상에서 광복 이후 북한에 진입한 소련은 해방군이고, 남한에 들어온 미국은 점령군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누구보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민족정신 함양에 힘써야 하는 광복회장이 역사를 배워가는 고등학생들에게 편향된 역사의식을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나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북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며 대한민국이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 지사도 미국을 점령군으로 인식했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대한민국이 해방된 것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미국의 승리에 기인한다. 그 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일본군에 대한 무장해제와 공공질서 확립 그리고 식민지 국가를 독립국가로 다시 세우는 과정이 필요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역할을 담당했다.

그 과정의 시초가 점령군의 역할이기에 점령군이라는 말에는 이의를 달지 않겠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점령군으로 어떤 역할을 했고 그 결과가 무엇인가에 따라 점령군이냐 아니면 진정한 해방군이냐를 판단해야 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세웠고, 소련은 소련 군인이었던 김일성을 앞세워 일인 독재체제인 공산주의 정권을 세웠다. 결국 분단국가로 고착됐다.

김일성은 소련의 승인과 지원을 등에 업고 한반도를 공산화로 통일하려는 남침을 자행했다. 김일성의 남침은 우리 민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고향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피란민의 행렬은 비참함의 극치였다.

당시 한국군과 유엔군 17만6000여명이 전사했으며, 55만여명이 부상 당하고, 4만2000여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됐다. 미군 사망자도 3만3686명에 이르는 등 사상자가 수십만 명이나 된다. 거기에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희생됐으며 320만 명이 고향을 떠나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전 국토의 80%가 초토화됐고 기반시설은 잿더미가 되고 삶의 터전은 파괴되었다.

그나마 북한의 적화통일 일보 직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뒤집었다. 그런데도 미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하고,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을 폄훼하는 등 반미 주장을 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한반도를 분단국가로 만든 원흉이 소련인데 해방군으로 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야말로 해방군이 아닌가. 미국이 아니었으면 광복회 자체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김 회장은 애국가를 부정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 이완용에 빗대는가 하면 고 백선엽 장군에게는 ‘사형감’이라고 하는 등 편향된 역사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 회장이 북한의 개인숭배와 압제를 보고도 ‘소련 해방군’ 운운하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것도 6.25때 도움을 준 나라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이념을 내세워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이념 논리로 역사의 뿌리마저 흔들 것인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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