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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로움’와 ‘홀로움’

며칠 전부터 집 밖 어디선지 간간이 꾸르륵, 꾸르륵, 칠면조(터키) 우는 소리가 들린다. 꼭 누구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 매해 이맘때면 그러려니 하면서도 올해는 유독 크게 들린다.

창밖에 서너 살짜리 어린애 정도 키의 터키가 서성이고 있다. 턱밑 벼슬이 불그스레하다. 그는 집 뒤뜰 아주 가까이에서 내 서재 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려고 벼르는 모양새다.

나를 정면으로 보면서 가만히 서 있기도 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360도로 사방을 살피면서 약간씩 앞뒤로 흔든다. 흡족하게 따뜻하지 못한 봄바람 속에서 터키 한 마리가 내 뒤뜰을 노닐고 있다. 많이 외로워 보인다.

어릴 적 하모니카를 배울 때 처음으로 연습하던 노래, 현제명 작사·작곡의 ‘고향생각’ 가사가 떠오른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이 부분에서 콧날이 찡하던 기억이 난다. 차중락의 1967년 히트곡 ‘사랑의 종말’에서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하는 처음과 끝부분의 절규 또한 당신과 나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우리는 명실공히 외로움을 회피하고 싶다.

외로움의 어원을 생각한다. 외톨박이, 외눈 할 때처럼 ‘외’는 복수의 반대말인 단수, 즉 ‘혼자’를 의미한다. 나는 일인칭 단수이고 우리는 일인칭 복수다. 숫자로 치면 홀수(odd number·이상한 숫자)는 홀로 있는 수. 반면에 짝수(even number·평탄한 숫자)는 짝이 있는 수다. 혼밥, 혼술 같은 단독 행위에 약간 삐딱한 시선을 던지면서 ‘내 나라’라는 말보다는 ‘우리나라’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 우리의 습속이다.

시를 탐독하는 당신이라면 아마 황동규 시인의 신조어 ‘홀로움’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라는 제목의 그의 시에는 고전적인 외로움은 쓸쓸함을 수반하지만 홀로움은 홀가분한 정서라는 메시지가 참 쿨하게 담겨있다. 홀로움이 외로움을 훨씬 능가하는 시대를 살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나와 당신!

‘lonely·외로운’은 ‘alone·혼자’와 어간이 같다. 전자가 쓸쓸한 뉘앙스를 풍긴다면 후자에는 속박을 벗어난 홀가분한 정서, 홀로움의 쾌적함이 은근슬쩍 숨어있다. 좋아하는 남녀가 서로에게 그윽한 시선을 던지면서 “Finally, we are alone·마침내 단둘이 됐네요”하며 속삭일 때의 이율배반성을 생각한다 ‘단둘’이라는 말은 이상한 말이다. 단둘=홀로 둘?

터키와 나 사이에 모종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다음 날에도 그는 같은 장소에 와서 같은 행동을 한다. 창문을 활짝 열고 동영상을 찍는다. 터키는 전혀 나를 무서워하거나 경계하는 기색이 없이 가슴을 한껏 부풀리기도 하고 꼬리 쪽 깃털을 힘껏 펼친다. 같은 날 ‘뒤뜰의 터키’라는 타이틀로 이런 시를 썼다.

“누가 먼저였는지 알 수 없어요/ 겨우 내내 도시 변두리에 숨어 살다가/ 더 견디지 못하고 밖에 나와/ 공작새처럼 활짝 날개를 펼치네/ 터키 한 마리 내게 속 깊은 호의를 보이네/ 누가 누구를 불렀는지 알 수 없어요/ 터키 한 마리 무서워할 것 하나 없는 숲속/ 실개천에서 목을 축인 후/ 5월의 온기에 몸을 맡기고/ 습습한 대지에 자꾸 입을 맞추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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