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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까징끼의 추억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승리한다. 세게 밀다 보면 끌려들고 너무 당기면 덮친다. 힘 세다고 당기기만 하면 상대가 줄을 놓으면 뒤로 나자빠진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제일 신나는 게임은 줄당기기다. 신체 건장하고 힘 좀 쓰는 악바리들을 선발해 양쪽 팀에서 출전했는데 나는 단 한차례로 선수로 출병하지 못했다.

입(말)만 나불 됐지 힘쓰고 싸움 하는 데는 젬병인 고로 출전 대신 흥과 힘을 돋구는 응원단장으로 활약했다. 응원단장이 좋은 건 져도 비난 받을 일 없고 무릎이나 손바닥 다칠 염려가 없다는 사실! 그 때 나는 알았다. 지는 사람도 이기는 사람도 모두 상처를 입는다는 것. 엉덩이에 멍이 들거나 팔꿈치가 삐고 손바닥이 긁히거나 무릎이 깨지고 피가 난다는 사실이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아픔도 아주 잠깐이지만 상처 난 손이나 무릎은 며칠 동안 아프고 쑤신다.

청군과 백군으로 갈라져 머리띠 졸라매고 밀고 당기다 보면 줄이 끊어지거나 서로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때 등장하는 만병통치약! 추억의 아까징끼. 아까징끼는 유년의 상처를 아물게 하던 추억의 삘간약이다. 어릴 적에 나는 좀 어리버리한 데다 산만했다. 먼 산 붉게 물들인 진달래꽃이나 무시로 흩어지는 찔레꽃에 취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여서 내 무릎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부주의를 나무라기 보다는 깨진 무릎이 안쓰러워 빨간약이 마를 때까지 호호 따스한 입김을 불어주셨다. 아까징끼 효력 때문인지 어머니의 입김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다음 날이면 피가 나던 상처가 굳어지고 아물기 시작했다. 홍시 따러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져 머리통이 깨진 칠성이도 우리집 빨간약 덕분에 된장을 바르지 않아도 됐다.

빨간 약은 1918년 일본에서 소독약으로 개발된 ‘아까징끼’에서 유래가 됐다. 아까징끼는 요오드팅크를 한문으로 표시한 발음인데 우리나라 말론 옥도정기가 맞다. 아까(빨간)+(요오드)징끼(팅크)인데 머큐로크롬(Mercuro-Chrome)의 색깔 때문에 빨간약으로 불린다. 초기 아까징끼에는 수은 함량이 많아서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1829년 프랑스 장 로골이 요오드의 소독효과를 발견해 그 명맥이 이어진다. 포비돈-요오드는 요오드의 강한 산화력으로 인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와 같은 세균들의 세포막 성분 중에 단백질을 파괴해서 사멸시킨다.

빨간색 아까징끼는 어려운 시대를 견뎌낸 추억 속의 만병통치약이다. 깨지고 상처난 곳만 아니라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파도 빨간약을 발랐다. 빨간색 약을 바르면 모든 아픈 곳이 낫는다고 믿었으니까 믿는 만큼 놀랍게도 치유가 됐다.

병원은커녕 보건소도 없던 시골 삼거리 동네에선 ‘엄마 손이 약손’이고 엄마가 의사였다. 지금은 튼실하지만 어릴 적엔 잔병을 달고 다녔다. 편두선이 부어 침을 삼킬 수 없으면 어머니는 양지바른 담벼락에 날 세워두고 “햇님, 우리 희야 목젖 내려앉은 거 꼭 고쳐주이소”라고 빌었다. 다음날이면 편두선은 가라앉았다.

밀고 당기고 넘어지며 죽을 고비 넘길 때마다 하얀 소복 입고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기도하던 어머니 모습을 보았다. 햇님 달님 별님 소슬바람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어머니의 수호천사다. 빨간색 아까징끼의 추억이 비슬산을 덮는 핏빛 참꽃으로 피어날 때면 어머니는 제일 먼저 피는 백목련으로 흩날리며 사립문 열고 유년의 마당을 쓸어내린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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