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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한국 공군의 뿌리 보존해야”…한우성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인터뷰

윌로우스 비행학교, 한인 애국심 결정체
100년 전 비행학교 창설 비전 계승해야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전 이사장이 임시정부 첫 비행장교였던 박희성과 이용근의 비행자격증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재 기자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전 이사장이 임시정부 첫 비행장교였던 박희성과 이용근의 비행자격증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재 기자

1921년 7월 7일 국제항공연맹(FAI)이 발급한 이용근(위)과 박희성 비행자격증. 김형재 기자

1921년 7월 7일 국제항공연맹(FAI)이 발급한 이용근(위)과 박희성 비행자격증. 김형재 기자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인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 비행학교’ 창설 100주년 <본지 7월 5일 a-4면> 은 한인사회에 어떤 의미일까.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를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와 공동집필한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전 이사장은 “대한제국 국권상실 후 독립운동 중 미주 한인사회가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우성 전 이사장은 한인사회 이민역사 150년은 크게 ▶조국(조선) 근대화 ▶국권상실 후 조국 독립운동 ▶조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뉜다고 말했다. 한 전 이사장은 “100년 전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창설한 일은 한인사회가 일심동체가 돼 집단으로 힘을 모아 만든 빛나는 역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미주 한인도 역사를 잘 몰랐고 한국 정부와 학계, 공군도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는 100% 한인사회의 비전, 희생, 헌신으로 가능했다. 한인사회가 100년 전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해 100년 후를 사는 후세도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우성 전 이사장과 일문일답.

-100년 전 한인 이민선조들이 비행학교를 창설한 발상이 놀랍다.

“1903년 12월 미국에서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했다.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공군 비행기가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 망명 중이던 노백린 장군(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은 독립전쟁을 어떻게 수행할까 고민했고 한인사회는 공군력 중요성을 깨달았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창설 전에 이미 비행술을 배우기 시작한 한인 청년들이 있었다. 군사기술과 비행술을 배워 조국 독립전쟁에 나가려 했다. 노백린 장군은 일본과 싸워 이기려면 공군력을 키워야 한다고 임정에 보고했고 이를 승인받은 공문서가 존재한다.”

-비행학교 창설 비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텐데.

“당시 한인사회의 애국심, 희생, 헌신에 임정의 군사정책이 맞아떨어졌다. 김종림 선생은 함경도 출신으로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하고 미국에 왔다.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 솔트레이크시티 철도 노동자로 일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숙박업 등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하다 북가주에서 쌀농사를 시작했다. 김 선생은 어려운 생활에도 한인 장학금을 내놨다. 1910년대 초 쌀농사 상업적 재배가 시작되고 1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김 선생은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번다. 1919년 당시 순익만 50만 달러로 한인사회 최초 백만장자가 됐다. 김종림 선생은 노백린 장군이 조국독립과 공군양성 어려움을 토로하자 “내가 내겠다”며 40에이커와 5만 달러(비행학교 창설자금 2만, 운영비 월 3000달러)를 썼다. 지금 시가로 1000만 달러다. 한인사회와 조국을 위해 이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은 요즘 시대도 찾기 힘들다. 사업가 중 조국을 위해 기여한 인물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가장 많이 낸 분께 ‘건국훈장 5등급’ 추서는 저평가라고 본다.

-‘박희성과 이용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비행학교(1920년 3월~1921년 4월)는 대홍수 피해로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한인 청년 수십 명이 훈련받았고 박희성과 이용근은 1921년 7월 7일 비행사 자격증을 딴다. 7월 18일 임시정부는 곧바로 비행병참위(현 소위)로 임명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공식적으로 임관시킨 비행장교 1호가 두 분이다. 비행장교 임명 후 두 분의 활동은 미미하지만 역사적 과정과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

-한국정부와 한인사회가 꼭 해야 할 일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공군의 뿌리로 발표했다. 2020년 당시 원인철 공군참모총장도 공군의 법통적 뿌리임을 강조했다. 비행학교는 한국과 미주 한인사회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비행학교 터와 교사와 기숙사 건물 2동은 지금도 남아 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장소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21년 한인사회는 연방 하원 4명 배출 등 새로운 약진 단계에 진입했다. 과거 우리가 무슨 일을 했고, 오늘날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 역사적 평가를 계속하고 이를 가르쳐야 한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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