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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동네 이름

서울에는 중요한 문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인 동대문은 원래 이름이 흥인지문(興仁之門)입니다. 인의예지 중에서 인이 흥하는 문이라는 멋진 뜻이 담겨있습니다. 인은 유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민중은 그저 동쪽에 있는 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흥인지문이라는 이름은 희미해지고 동대문이 익숙해졌습니다.

흥인지문은 이름도 좋습니다만 방향의 비밀도 담고 있습니다. 인의예지에서 인은 동쪽을 의미합니다. 의는 서쪽, 예는 남쪽, 지는 북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남대문의 원래 이름은 숭례문인 것입니다. 서쪽에는 돈의문(敦義門)이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홍지문(弘智門)이 있습니다. 인의예지 말고도 신(信)이 있는데 신은 가운데를 의미합니다. 보신각(普信閣)에 바로 신이 들어있습니다. 한가운데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있는 지역에는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의 이름이 바로 천장산(天藏山)입니다. 저는 저희 집 주소에 천장산이 쓰이기까지는 천장산이 아니라 고황산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이 산의 이름을 늘 고황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천장산이라는 이름은 하늘이 감추어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감추었다고 하기에는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천장산을 오르는데 꼭대기에 올라보면 해발 140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천장산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주변에 능이 많다는 점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풍수지리가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하늘이 감추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합니다. 천장산을 둘러싸고 의릉과 홍릉, 영휘원, 숭인원 등이 있습니다. 의릉은 경종의 능이고, 홍릉은 지금은 수목원이 있는데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후 고종과 함장하기 전까지 있었던 능입니다. 지금은 수목원 안에 터만 남아 있습니다. 영휘원은 홍릉수목원 앞쪽에 있는데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의 어머니 엄귀비의 묘입니다. 숭인원은 영친왕의 아들의 묘입니다. 천장산 자락은 이렇게 능이 많았던 마을이었습니다. 하늘이 왕릉의 자리를 감추어 두었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천장산 주변은 대학가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왕릉이 대학이 되다니요. 천장산 아래에 경희대학교가 있고, 의릉 쪽으로 한국 예술종합학교가 있습니다. 한국 외국어대학교도 바로 이어져 있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만 서울 시립대학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입니다. 홍릉 쪽으로는 카이스트 대학원이 있습니다. 다양한 연구기관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능이 많았던 곳이지만 이제는 인재들의 산실이 되어있습니다. 천장산의 풍수지리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에 대학이 많이 들어선 것을 보면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경희대학교가 있는 동네의 이름은 회기동입니다. 회기라는 이름은 회묘(懷墓)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묘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회묘가 있던 자리라고 하여 회기라고 합니다. 지금은 한자가 바뀌어 회기(回基)가 되었습니다. 회묘는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의 묘입니다. 지금은 고양시의 서삼릉에 이장되어 있습니다. 경희여고, 경희초등학교, 경희의료원 쪽에 연화사(蓮花寺)라는 절이 있는데, 폐비 윤 씨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서 세워진 절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동안 연화사에 있는 찻집에서 제자들과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 책의 원고 중에서 연화사에서 쓴 것도 꽤 있습니다.

지명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고 문화입니다. 지명을 통해서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사는 지역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드린 것입니다만 모든 지역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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