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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할 시간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올해가 만 37년이 된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부족했고 낯설었다. 이발소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손재주가 참 아름다운 아내의 손을 빌려서 머리 손질을 시작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시간도 어언 37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민 초창기부터 아내의 손길처럼 변함없이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가죽 허리띠다. 그 허리띠는 지금까지 내 허리를 감은 채 어디 가는 법도 없이 이민의 삶과 시간을 내 허리에 찰싹 붙어서 함께 살아왔다. 처음에 첫 구멍을 사용했는데 십 수년간 일편단심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일편단심 첫 번째 구멍을 고집하며 살았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슬그머니 허리띠 쇠 침의 거주지가 변두리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삶이 무기력해지면서, 무기력한 몸은 정신마저 물에 젖은 과자 부스러기처럼 흐물거리게 만드는 법이다. 가라앉는 잠수함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 아내와 동네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족욕을 하고, 팔 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한 번 하기가 참으로 고통스러웠는데, 지금은 제법 개수가 늘었고 그 횟수의 증가는 진행형이다. 팔이며 어깨, 그리고 배 주변의 근육이 극한의 고통을 호소하지만, 고통이 큰 만큼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두어 달 전부터 30년 넘게 내 허리를 지켜온 허리띠의 쇠 침이 처음 샀을 때의 그 첫 자리로 슬그머니 돌아갔다.

그런데, 드디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마침내라고 해야 할까? 30년도 전에 샀던 그 허리띠가 절단 났다. 채소가게에서 6년, 그리고 세탁소 생활 30년, 내 이민의 삶 중 나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낸 물건이 있다면 바로 최근에 절단이 난 내 허리띠일 것이다. 가죽으로 된 물건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이 들었다. 긴 시간을 함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치 내 몸의 한 부분인 것처럼 피가 허리띠까지 전달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나와는 가까웠던 존재가 바로 가죽 허리띠이다.



며칠 전, 그 오래된 허리띠의 구멍이 찢어지면서 내 허리띠와 함께했던 그 오랜 시간과 정분도 정리해야 했다. 내 몸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것 같은 허전함이 며칠 동안 내 허리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간 것은 갔지만 남은 사람은 또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방식이 아닌가. 미루지 않고 색깔별로 허리띠 두 개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닌데 가죽의 질도 괜찮고 얍삽한 매무새도 괜찮은 것 같다. 조금 의심이 가긴 했지만 허리 사이즈 30인치로 주문을 했는데 내 허리에 정확하게 맞았다. 먼저 허리띠는 내 허리둘레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았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새로 내 허리를 차지한 허리띠는 좋게 말하자면 내가 호강을 시켜줄 것이다. 별 고통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나와 해로할 수 있도록 지켜줄 것이다. 아침마다 열심히 운동하며 내 몸 관리를 하면 내 새로운 허리띠는 순탄하게 나와 밀월을 긴 시간 지속할 것이다. 엄한 시절에 무심한 나를 만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나를 떠나지 않는 내 오래된 허리띠에 정말로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김학선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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