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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미국 역사 바꾼 남북전쟁 최대 격전지

<9>게티스버그 전쟁터(Gettysburg National Battlefield)

158년 전 7월 1~3일 전투
16만 병력 처절했던 현장
연 100만명 찾는 기념공원
링컨 유명 연설도 이곳서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된 게티스버그 전투 현장. [중앙포토]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된 게티스버그 전투 현장. [중앙포토]

전투 4개월 뒤 링컨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세 마디 연설을 했다. [중앙포토]

전투 4개월 뒤 링컨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세 마디 연설을 했다. [중앙포토]

게티스버그 전투 현장을 둘러보는 투어 버스. 가이드 동반 투어버스는 2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중앙포토]

게티스버그 전투 현장을 둘러보는 투어 버스. 가이드 동반 투어버스는 2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중앙포토]

6월도 거의 다 지나갔다. 지난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71주년이었고 한인사회에서도 곳곳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이 무렵 미국도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된 게티스버그 전투가 7월 1~3일 사흘간 벌어졌다.

남북전쟁은 무려 4년 동안 진행된 미국판 동족상잔(?) 이었다. 그 처절했던 전쟁 기간 중 가장 치열하고 가장 참혹했으며 남과 북의 승부를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곳이 바로 이곳 게티스버그였다.

펜실베이니아 중남부 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인 게티스버그에서 대치하던 남군과 북군. 1863년 7월1일 이른 아침, 남군의 선제 공격으로 운명의 전투는 시작됐다. 당시 객관적 전력으로는 남군이 북군보다 월등히 강력했다. 그러나 막강 전력에 선제공격까지 감행했지만 결과는 남군의 대패였다. 북군은 여기서 잡은 승기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링컨의 주창대로 노예해방 또한 실현될 수 있었으니 게티스버그야말로 미국의 역사를 바꾼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여행기를 오랫동안 써 온 필자로서는 게티스버그 방문도 반드시 이루어고 싶은 오랜 꿈이었다. 지금은 몇 번씩이나 가 봤기에 눈을 감고도 찾아갈 정도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어디가 어딘지 그야말로 뜬 구름 잡는 기분이었다.



물건을 제대로 모르면 돈이라도 많이 주라는 말이 있듯이 첫 방문 때는 제일 비싸고 시간도 사장 긴 2시간 짜리 투어 버스를 예약했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영화관으로 들어가 30분 정도 남북전쟁에 대한 영화를 보았고, 2층으로 옮겨 당시 전투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시클로라마(Cyclorama) 영상도 감상했다.

촌놈은 어디를 가나 티가 나는가 보다. 시네마스코프나 아이맥스 영상은 그래도 익히 봐 왔지만 이놈의 시클로라마 영상은 난생 처음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데다 360도 원형 화면 전체에서 벌어지는 파노라마식 입체 장면은 감탄을 넘어 경이 그 자체였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뽀얀 포연에 가려 식별조차 어려운 가운데 요란한 포탄이 터지면서 번쩍 번쩍 비치는 섬광을 보면서 이게 정말 영상인지 실전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더욱이 수많은 말과 마차들이 넘어지고 뒹굴며 부지기수로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장면 앞에서는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면화 생산지의 노동력 문제에서 발단되어 노예 해방문제로 까지 비화된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이해 다툼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남부에 있던 많은 주들은 면화 수출이 큰 수입원 이었는데 북부지역에서 정책적으로 수출에 제동을 걸었을 뿐 아니라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니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온 상황이었다. 거기다 멕시코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어디 궁둥짝이라도 비빌 데가 없나 기회만 노리고 있던 수많은 유휴 군인들에겐 마침 골 부리고 싶은 사람한테 빰까지 때린 격이기도 했다.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곳곳에서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들을 찾아 다니며 가이드의 이런 설명을 들었다. 흑인도 한 사람 없는 100% 백인들 틈에 끼어 누리끼리한 동양인이 미운 오리새끼 마냥 용감하게 동승하고 있으려니 괜히 집중 조명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군의 선제공격에 후퇴를 거듭하던 북군이 전세를 뒤집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흑인들이 도망 나와 노예 해방을 주창하는 북군으로 편입하는 바람에 7월3일 전세가 극적으로 역전되었다는 가이드의 얘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흘 동안의 처절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 참전한 병사는 남군 북군 모두 합해 16만 여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죽거나 다친 병사는 얼마나 많았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이 전투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된 병사는 모두 5만 1000명이 넘었다. 북군은 2만 1000명, 남군은 2만 8000명. 당시 전투에서 희생된 말과 병사들의 시신을 모아놓고 태우는데 고약한 악취가 석 달 동안이나 근방을 진동했다 하니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못다 핀 한을 품고 구천을 헤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이방인의 가슴조차도 아리고 또 아린다.

▶여행 메모
게티스버그 전쟁터는 국립 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 주소 : 1195 Baltimore Pike Gettysburg, PA 17325) 내에 있다. 연 방문자도 100만 명이 넘는다. 게티스버그가 더 유명해 진 것은 전투가 끝난 뒤 4개월 가량 지나 이곳을 방문한 링컨 대통령 때문. 그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했는데 그 현장이 현충원으로 남아있다.
공원 입장료는 없지만 영화를 보려면 따로 관람료(시클로라마 포함)를 내야 한다. 어른 15달러. 65세 이상 시니어는 14달러. 가이드 설명을 동반한 투어는 자동차(6명까지) 75불이고 버스는 어른1인당 35달러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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