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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인물탐구] 병든 아들을 둔 왕의 신하

덴버예닮장로교회 윤우식 목사

요한복음 4장47절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에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왕의 신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아들이 병에 들어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4:46,47. ‘왕의 신하’라는 사회적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위치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신하의 아들의 병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병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병들었더니’라는 부분의 헬라어는 ‘에스데네이(ησθενει)’라는 단어는 ‘아스데네오(ασθενεω)’의 미완료시제로 지속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들이 병을 계속 앓고 있던 상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병이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한다면 일찍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고 이제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그 병이 점점 악화가 되어서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전부터 그 병이 심각한 상태였으면 예수님을 일찍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의 초기에는 자신의 지위와 형편, 여건에서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일찍 찾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 뭔가 일이 심각하게 진행될 때입니다. 내 경험과 능력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일 앞에서는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을 것이 ‘나의 능력’과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능력과 가능성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심각할 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상과 같은 일 앞에도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나에게는 너무 쉬운 일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시작해야 합니다.

아들이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찾은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아들이 누워 있는 가버나움으로 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기를 간청합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요한복음 4:47. 여기에 ‘듣고 가서’에서 이 신하가 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귀신들린 자도 낫게 하고, 병든 사람도 낫게 한다는 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의 병도 예수님께 찾아가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병을 낫게 하는 등의 기적을 보이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대속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목하고 집중한 것은 복음이 아니라 기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48. 이 말씀은 복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이 듣고, 보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는 이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열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한 것은 예수님이 복음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무엇 때문에 열광을 합니까? 어쩌면 신비적인 일들이 일어나야만 성령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떠들썩하고, 뭔가 쇼킹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떠들썩한 것이 아닙니다. 신비적인 능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위대한 능력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전인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왕의 신하 역시도 예수님의 복음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실 기적을 기대하고 온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 서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았습니다. 그 앞에서는 기적이나 이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욕을 하고, 침을 뱉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기대했던 이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기적은 ‘병이 낫는 것’,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은 영원한 죽음 가운데서 멸망 당할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적과 이적을 좇는 신앙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좇아야 하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병을 낫는 것, 사업이 회복되는 것과 같은 기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참 제자로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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