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인물탐구] 병든 아들을 둔 왕의 신하
덴버예닮장로교회 윤우식 목사
아들이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찾은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아들이 누워 있는 가버나움으로 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기를 간청합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요한복음 4:47. 여기에 ‘듣고 가서’에서 이 신하가 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귀신들린 자도 낫게 하고, 병든 사람도 낫게 한다는 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의 병도 예수님께 찾아가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병을 낫게 하는 등의 기적을 보이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대속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목하고 집중한 것은 복음이 아니라 기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48. 이 말씀은 복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이 듣고, 보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는 이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열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한 것은 예수님이 복음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무엇 때문에 열광을 합니까? 어쩌면 신비적인 일들이 일어나야만 성령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떠들썩하고, 뭔가 쇼킹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떠들썩한 것이 아닙니다. 신비적인 능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위대한 능력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전인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왕의 신하 역시도 예수님의 복음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실 기적을 기대하고 온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 서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았습니다. 그 앞에서는 기적이나 이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욕을 하고, 침을 뱉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기대했던 이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기적은 ‘병이 낫는 것’,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은 영원한 죽음 가운데서 멸망 당할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적과 이적을 좇는 신앙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좇아야 하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병을 낫는 것, 사업이 회복되는 것과 같은 기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참 제자로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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