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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정 기고] 떠남

떠남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바로 그날이 다가왔을 뿐인데 생각처럼 즐겁지 않았고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배웅하는 지인들과 작별을 하고 떠나오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그것은 기쁨이나 슬픔이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생경한 감정이었다. 도로의 양 옆으로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숲이 우거져 있었고 차는 점점 내가 살던 집과 도시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외로움과 그리움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영영 떠나고 있었다.

공항에서 짐을 보내는 일까지 함께 해주시며 따뜻하게 배웅해 주신 L 집사님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자 울컥하며 목이 뻐근해 왔다. 남편의 눈이 빨개지는 듯 했다. 바라던 대로 떠나는 건데 이건 또 뭘까.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채, 우리는 잠시 의자에 앉아 망연히 창 밖을 응시했다. 멍한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고속 화면처럼 흘러갔다. 많은 장면들이 지나갔지만 그것 또한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특별한 환송 모임의 자리를 만들고 공항까지 함께 해준 L 집사님 부부의 속 깊은 이별 인사는 ‘감동’ 그 이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고맙고 미안하다.

새벽부터 배웅을 나온 지인들과 떠나기 직전까지 음식을 해서 나르거나 식사 초대를 하던 이웃들의 정겨운 배려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진정한 고마움을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서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주위에 있는 이웃들과 헤어짐이라는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바로 그게 그 말인데 생각을 못했다니, 어이가 없다. 이런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긴 헤어짐 어쩌면 영영 헤어짐 앞에서 섭섭해 하며 이것저것 챙기며 떠남은 새로운 출발이라며 축복하고 환송해준 이웃들은, 미국의 기억을 푸근함으로 바꿀 수 있게 해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지루한 14시간의 비행은 코로나로 인해 세 좌석을 혼자서 쓸 정도여서, 만석으로 오가던 때와 다르게 매우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창 밖에는 눈 부신 햇빛 아래, 구름들이 마치 남극의 설원 같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동화 속에서는 선녀만이 구름 위를 거닐 수 있었지만 나는 실제로 구름 위의 펼쳐진 신비한 광경을 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머리 속은 떠나면 잊고 싶다던 미국 생각으로 가득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기는 혼탁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정치인이나 되는 듯이 침 튀기며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거리는 복잡하고 운전은 경쟁하듯이 거칠다. 인심은 점점 각박해지고 물가는 비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기로 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새벽이면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길게 들리고 하루 종일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 이 곳은 희망의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새벽에 잠을 깨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 곳이 어디인가를 한참 생각할 때가 있다. 날이 밝아 오면 높은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과 멀리 보이는 동네가 뿌옇게 보일 정도로 공기가 나쁜 것을 보며 비로소 한국에 온 것을 실감한다.

맑고 신선한 공기와 저녁이면 형용할 수 없는 멋진 노을이 펼쳐지는 미국은 이제 잊을 수 없는 곳, 그리운 곳이 되었다. 미국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떠나온 후에야 내 기억과 생각 속에 미국이 아주 많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떠나 보낸 곳에서는 떠난 사람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떠나온 사람은 그때부터 떠나온 곳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추억의 여운으로, 인연으로, 내 안에서 점점 깊이 새겨질 것 같다. 마치 문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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