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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 오] 한인 고교생 3명 낀 살인극에 미국 사회 충격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5화> '한인사회의 대변인' 앤젤라 오 변호사
<7> 모범생들의 살인 공모

한인 학생 3명이 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베터 럭 투모로우’는 당시 아시안 학생들의 삶을 보여준 영화로 주류사회의 눈길을 끌었다.

한인 학생 3명이 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베터 럭 투모로우’는 당시 아시안 학생들의 삶을 보여준 영화로 주류사회의 눈길을 끌었다.

중류층 가정 출신의 모범생들 범행에 경악
가정교육의 중요성 새삼 되새기는 계기 돼


내 경험에 비춰보면 아시안 남학생들은 미국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그룹이다. 지금은 K-팝 등이 알려지면서 아시안 남학생의 매력이 여학생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안 남학생은 체격이 왜소하다 보니 학교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면 눈길을 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외톨이가 된 남학생은 당연히 자신을 불러주는 친구와 어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게 찾아온 찰스 채(17) 군도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케이스다.

실제로 아시안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백인이 다수 재학 중인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시안 학생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다. 중국계 감독이 촬영한 이 영화는 학교와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4명의 아시안 학생들이 인종차별과 백인-아시안 문화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좌절감을 보여준 내용으로, 블록버스터급 흥행은 아니었지만,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의 제목은 ‘베터 럭 투모로우(Better Luck Tomorrow)’.

주인공들은 학교를 대표하는 경시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는 등 한마디로 학교를 대표하는 모범생들이다. 하지만 더 좋은 성적을 부모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학교생활을 한다. 결국 이들은 공모해 시험 전 에 답안지를 베끼는 부정행위로 성적을 올리다가 나중에는 친구도 살해하게 된다. 이들은 엘리트의 삶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한다.



▶베터럭 투모로우(Better Luck Tomorrow)

안타깝게도 영화 속 이야기는 사실이다.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의 명문 고등학교로 알려진 서니힐스 고교 학생 5명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또 내 의뢰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92년 12월 31일 발생한 이 사건은, 서니힐스 고교에 재학 중이던 중국계 학생 로버트 챈(당시 18세)의 주도로 한인 학생 3명과 중국계 학생 1명이 공모해 동료 학생을 살해한 후 암매장한 것으로, 주류 언론들은 ‘우등생 살인사건(Honor Roll Murder)’으로 부르며 재판에 주목했었다.

당시 경찰 기록에 따르면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스튜어트 앤서니 타이(당시 17세)는 싱가포르 출신의 중국계 이민자의 아들로, 풋힐 고등학교의 수석 졸업생이었고 졸업 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의사였는데 침실이 11개,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가 있는 8000스퀘어피트 크기의 집에 살고 있을 만큼 부유했다.

타이의 살인을 주도한 챈도 대만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챈은 명문 하버드와 프린스턴대 입학 허가를 받아 놓고 고교 수석졸업을 다툴 정도의 수재였다.

공범으로 체포된 한인 학생들 역시 모두 모범 우등생에 컴퓨터 수재들이었고 가정 환경도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편이어서 사건이 알려진 후 한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선 모범생 밖에선 범죄자

오렌지카운티 검찰이 당시 공개한 기소장에 따르면 사망한 타이와 주범 챈은 컴퓨터로 알게 된 친구 사이다. 타이는 모범생이었지만 밖에서는 무기 밀매를 일삼던 아시안 갱단의 보스 ‘마틴 고어’였다. 이들은 전화국의 비밀 코드를 컴퓨터로 뽑아내 해외 통화를 공짜로 하거나 크레딧 카드 관리회사의 중앙컴퓨터를 침범해 고객의 카드로 물품을 사들이는 등 컴퓨터 범죄를 저질렀다.

어느 날 챈과 타이는 평소 타이가 거래하던 컴퓨터 부품 딜러의 집을 털 계획을 세웠다. 챈은 강도 행각을 도울 다른 4명의 서니힐스 학생들을 모집했고, 에이브러햄 아코스타(16)와 한인 김 모(16) 강 모(17), 채 모(17)군 등이 가담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연히 타이가 떨어뜨린 지갑에서 타이의 이름과 주소, 학교 이름이 가짜라는 것을 발견했고 타이가 자신들을 경찰에 밀고하려는 것으로 단정해 살해하게 된다.

챈은 사건 당일 오후 5시쯤 타이를 아코스타의 집 차고로 유인해 함께 야구방망이로 타이의 머리를 때리고 쇠뭉치로 머리와 배를 10여 차례 내리쳤다. 그래도 타이가 숨지지 않자 챈 등은 타이의 입에 알코올을 붓고 테이프로 입을 봉한 후 20여 분 뒤 집 안에 미리 파놓았던 웅덩이로 끌고 가 묻어버렸다. 이때 김 모 군 등 한인 고교생들은 망을 봤으며, 범행 직후 일행은 타이의 닛산 300ZX 스포츠카를 운전해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캄튼으로 옮겨서 버리고 오렌지카운티에 돌아와 새해맞이 파티를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된 건 타이의 자동차가 부품이 뜯겨나간 채 발견되면서부터다. 처음엔 유괴살인으로 추정됐으나 타이의 부모가 고용한 사설 탐정의 활약으로 실체가 드러났고 결국 범인 전원이 경찰에 체포됐다.

▶잘못 사귄 친구로 살인 연루

사건의 끔찍함과 언론의 주목으로 재판은 팽팽하게 진행됐다. 법정에서 검찰은 내내 친구를 죽여 파묻은 아시안 모범생들의 빗나간 행위에 무거운 형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망을 봤다는 이유로 공범으로 체포된 채 모군도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채군은 막 교회에서 진행되던 수련회에 참가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잠깐만 보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간 곳이 범죄 현장 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나중에 타이의 살인과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소년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2년 여에 걸친 재판에서 채군은 감형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인 학생들은 성인 법정에 서야 했고 범행의 잔인성 등으로 결국 25년 이상의 중장기형을 선고 받았다. 사건을 주도한 챈은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한인 가정 현주소

여전히 많은 한인 청소년들이 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인가정상담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0~18세 아동의 상담 건수가 적지 않게 차지하고 있다. 2018년의 경우 24명이 상담 받았는데 이는 전체 상담자의 12%를 차지한 규모다. 또 2019년에는 43명(17%), 2020년 31명(16%)이 상담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가정상담소는 통계 보고서에 “전체 내담자 중 25세 이상의 성인이 가장 많았지만 그 다음은 18세 미만의 아동이었다”며 이는 정부기금으로 운영되는 개인 상담 프로그램의 대상이 성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별도의 아동 상담 케이스 외에 부모간의 갈등으로 발생하는 부모-자녀와의 관계와 심리적 상태까지 포함한다면 이 수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한편 가정상담소는 “일반적으로 연말에는 전화 문의가 평소보다 적지만 2020년 11월과 12월에는 전년도보다 늘었다”며 “이는 계속된 팬데믹이 가족 관계와 심리적 상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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