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 과유불급(過猶不及)
에스더가 뉴저지에 마실 온 블루 모자와 나를 레바논 음식점에 점심 초대했다. 나는 레바논 음식은 처음이다. 원래 모로코·알제리·리비아·레바논·터키 등의 중동 지역은 언어와 종교는 달라도 음식만큼은 통곡물·채소·과일·올리브오일·생선 등 지중해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로 최대한 간단히 조리하는 건강식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중동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역으로 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한 데다 로마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식민지 시절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면서 음식문화가 발달하여 ‘미식의 나라’, ‘중동 음식의 꽃’이라고도 불린다.애피타이저로 렌틀과 가지요리, 채소 튀김, 토마토, 올리브와 피타 빵을, 메인으로 닭고기와 소고기 케밥에 샐러드, 블루를 위한 핑거 치킨까지 주문하니 음식이 다양했다. 올리브 오일과 요거트 소스를 기본으로 한 요리들은 마늘을 많이 사용한 심플한 소스와 조리법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매콤하면서 재료 본래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 향이 다른 소스로 변화를 준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계속 먹혀 오랫만에 포식을 했다.
요즘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요리 만들기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이 양념의 폭탄물 같다. 물론 음식 본래의 역사와 맛을 지켜가며 조리법을 가르쳐주는 귀한 영상도 많다. 그러나 조회 수 높은 많은 인기 영상물 들이 과한 양념을 당연시한다. 음식 한 가지 만들면서 단맛을 위해서 설탕뿐만 아니라 매실청·올리고당·물엿까지 다 넣고, 김치를 담그면서도 온갖 종류의 젓갈이며 액젓은 물론 김칫국물에 다시마·양파·무·표고버섯·대파·멸치·건새우를 넣어 우린 멸치육수에 다시 또 사과·배·무·양파까지 갈아 넣는다. 고기 양념하려면 웬 간장 종류도 그리 많은지, 조선간장·양조간장에 멸치 간장·쯔유·굴 소스·액젓류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들은 모두 달고, 짜고, 맵다. 과잉된 맛에 길든 미각은 점점 더 자극성 있는 음식을 요구하게 된다. 정말 맛난 음식은 꼭 필요한 양념을 적당량 넣어 조리할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적당한 요리 시간과 먹을 때의 온도도 매우 중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그래서 요즘 많이 묵상한다. 공자가 이 말을 했을 때의 과함은 모자람과 같다는 뜻이었지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아니었다. 나이 드니 비로소 이 말도 제 뜻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과한 것이 모자람과 다르지 않다는 이 말을 나는 오랫동안 과함이 모자람만 못하다고 잘못 해석해왔다. 음식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늘 평정을 유지하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음이 기본 도리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는 쉽사리 당도할 수 없는 경지이기에 살아가는 동안 중용 지덕을 위해 스스로 담금질을 계속하는 것이다.
며칠 전, 마침 한국그로서리에 예쁘고 동그란 한국 호박이 나왔길래 사다가 새우젓에 볶았다. 냄비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파를 썰어 넣어 볶다가 파 기름이 충분히 되었을 때 호박을 넣고, 새우젓을 넣은 후, 뚜껑을 덮고 불을 완전히 낮춰 뭉근하게 오래도록 익혔다. 한참 익혀 국물이 자작하게 우러난 호박은 양념이라야 한 티스푼도 안 되는 새우젓만 들어갔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달큰하면서도 미묘한 맛이 나는지 신기했다. 과유불급 레시피의 마력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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