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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스몰 클레임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에구머니나 깜짝이야! 굴뚝 안을 들여다보는 듯 새까맣다.

어려웠던 시절 냉장고가 고장 났다. 새로 냉장고를 살 여유가 없었다. 동내 신문을 뒤져 냉장고 고치는 사람을 불러 고치고 캐시로 줬다. 서너 시간 후에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치즈 녹듯 내장 플라스틱이 고약한 냄새와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수리공에게 당장 전화해서 악을 썼다.

“냉장고를 물어줄 수 없을뿐더러 수리 비용도 돌려줄 수 없다. 스몰 클레임으로 고소해.”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시안인 네까짓 것이 감히 나를 소송할 수 있겠냐는 투다.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먹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조소하는 잔인한 목소리였다. 끊긴 전화 신음을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오후 4시에 채널 2에서 방영하는 Judy 판사의 5000달러 미만 소액 민사소송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그녀가 다루는 사건은 거의 같다. 자동차로 발생한 소송, 개에게 물린 사건, 꿔준 돈을 받지 못한 경우, 집세로 인한 세입자와 집주인과의 소송 그리고 집수리 컨트랙터와의 소송들이 대부분이다.

오후 4시가 되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내 몸은 지칠 시간이다. 쥬디 판사의 질문 그리고 원고와 피고의 대답을 듣고 그녀가 판결을 내리는 동안 나도 나름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쥬디 판사의 칼날 같은 공정하고 투명한 판결이 나의 피곤함을 한 방에 날려 보낸다.

그녀는 원고나 피고 중 잘못한 사람에게 질문 공세를 퍼 붇는다. 질문하는 과정에서 거짓이 발각되면 소송에서 진다. 자동차 사고의 경우 보험 없는 운전자는 무조건 패한다. Yes나 No로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고 우기면 퇴장당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상은 내가 상상하는 세상이 아닌 너무나도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사람 사는 것이 복잡한 것 같지만 아주 단순하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일단 법을 잘 지키면 된다. 돈은 절대 꿔주지 말아야 한다. 집세는 어김없이 제때 내고 집주인도 디파짓 한 돈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현찰로 지불하지 말고 증거를 남길 수 있는 체크나 크레딧 카드로 지불해야 한다. 일 처리를 말로 하지 말고 서류로 날짜와 사인을 해서 증거로 남겨야 한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아무리 방어를 하고 조심해도 뚫고 들어와 사기를 치는 놈들이 날뛰니 장담할 수 없다.

쥬디 판사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욕심을 내다 삶이 엉키어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려고 내 삶을 정리한다. 가진 것이 한 가지 줄수록 한 가지 걱정은 줄며 자유로워졌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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