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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은순 할매는 중학생

지난주 인간극장의 제목이다. 20년 넘게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간극장이, 이번에는 81세 나이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은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는 5년간 무려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전북 차사순 할머니가 나를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중딩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할머니는, 학교 가는 또래들 책가방 속 필통의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하루는 오빠 책을 몰래 펼쳐보다 호된 야단을 맞았다. 22세에 결혼, 사 남매를 잘 키워낸 할머니의 평생소원은 글 한 번 읽어보는 것이었다. 살다 보니, 배운 길쌈과 농사일보다 글 읽고 쓰는 게 더 필요한 일이었다. 아들이 마을 초등학교에 어머니의 입학을 부탁드려 열심히 국어 과목에 집중하며 학교에 다니던 중, 늘 격려해주고 사랑해주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학교 다니느라 슬픔을 잘 이겨내고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어머니에게, 자녀들이 이번에는 중학교 진학을 권했다. 마침 학생 수가 많이 감소한 마을 중학교에서도 환영이었다. 그렇게 은순 할머니는 81세에 중딩이 되었다.

이 중학교 1학년은 전체가 열 한명이다. 초딩 때부터 같이한 어린 친구들은 열심히 할머니 동급생을 거둔다. 다음 시간을 안내해 드리고, 탁구도 가르쳐 드리고, 체험 학습 가서 한 조가 되어 캠핑도 한다. 선생님들은 할머니 수준에 맞도록 유행가 가사로 된 특별 교재도 만드는 등, 열심히 한글을 가르쳐 드린다. 그 결과, 할머니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보청기 없이는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한 은순 할머니의 다음 목표는 영어다. 알파벳부터 시작이다!

이전부터 나는 조부모 세대와 아이들 세대 간의 어떤 공동체를 생각해왔다. 예를 들어 보육원 아이들과 양로원 혹의 경로당 노인들이 서로 삶을 나눌 때 상호 간에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 긍정의 에너지가 발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은순 할머니와 13살 동급생들의 학교생활을 보면서, 이런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 할머니 동급생은 아이들에게 일생 얼마나 훌륭한 롤 모델로 기억될 것인가. 인생 교훈을 나누는 시간, 은순 할머니는 “뭐든지 때가 있다”라는 글에 모종 그림을 곁들여, 당신의 손주들보다도 어린 동급생들에게 배움에도 때가 있으니 지금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은순할머니는 사실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내 외할아버지는 서당 훈장이셨다. 그런데도 여자라고 엄마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글을 안 가르치셨다. 유독 영특하셨던 엄마는 혼자서 한글뿐 아니라 한자까지 다 익히신 사자성어의 달인이셨다. 2년 전 94세로 돌아가실 때까지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드린 책들, 특히 역사 서적들을 즐겨 읽으시고, 영어 워드 서치 책을 펴놓고 줄을 그으며 늘 단어 찾기를 하셨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어를 혼자 익혀 초등학교 나온 척 무난히 인터뷰를 통과해 일본 회사에 취직도 하셨다. “엄마가 한국 학력 위조 원조네”라고 하며 엄마와 난 많이 웃었었다. 엄마도 한국에 사셨으면 학교에 보내드렸을 텐데. 중학교 교복을 입고 에비씨디 이에프지를 노래하시는 은순 할머니의 얼굴에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엄마가 많이 그립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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