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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 오] 유죄평결 15세 한인소년…변호사란 직업에 회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5화> '한인사회의 대변인' 앤젤라 오 변호사
<6> 형사법 변호사의 길을 떠나다

폴 염 군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랜초쿠카몽가 수피리어 법원. 당시 이 지역은 보수적인 백인 주민들이 주류를 이뤘던 곳이다.

폴 염 군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랜초쿠카몽가 수피리어 법원. 당시 이 지역은 보수적인 백인 주민들이 주류를 이뤘던 곳이다.

훈육 이유로 학대당하다 엄마·여동생 살해
'비정한 아들'로만 부각 소년의 상처는 외면


“우리는 그의 2건 2급 살인혐의에 대해 유죄를 평결합니다.”

지난 1999년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폴 염(왼쪽)군을 변호한 앤젤라 오 변호사가 염군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99년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폴 염(왼쪽)군을 변호한 앤젤라 오 변호사가 염군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처음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실감을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랜초쿠카몽가 수피리어 법원의 천장만 쳐다봤다. 최소 40년, 가석방 되지 않으면 어쩌면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 할지 모른다. 한참 후 아이는 법정을 두리번거렸다. 어린 손자를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재판 초반에 결사적으로 매달리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외조부모와 이모 등 친척들을 찾는 듯 했다. 한참 후 아이는 나를 보며 말했다. “더는 바깥 세상에 나갈 의미가 없어요.” 다시는 자유를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어린 미성년 학생에게 차가운 법의 잣대를 내세운 법정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형사법 변호사가 된 후 처음으로 내 직업에 회의를 느꼈다.

▶폴을 만나다



이모의 다급한 부탁에 만난 폴은 범죄 혐의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앳된 15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얼굴과 나이에 맞지 않는 살인이었다. 그는 엄마와 여동생을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의 범인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해보니 일반 남성도 다루기 어려운 이 총으로 엄마와 동생을 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렸고,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살인을 계획하고 죽일 만큼 악한 심성도 보이지 않았다.

폴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다 갖춘 성공한 이민자 가정의 맏아들이었다. 사업가인 아버지 덕에 집안은 부유했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하며 두살 터울의 두 자녀를 돌보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였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폴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학대를 받고 있던 피해자였다. 사업차 잦은 출장 스케줄로 집을 자주 비우던 아버지는 훈육 차원이라며 폴을 엄격히 대했다고 전했다. 폴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굉장히 뛰어났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곧장 매를 들었다.

▶외면당한 정신분석 자료

폴이 당한 학대는 학교에서도 일찌감치 감지했다. 폴의 등과 팔 등에서 심한 멍자국을 발견한 폴의 담임교사는 샌버나디노카운티 아동보호국에 신고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사회복지사는 경찰과 함께 폴의 집으로 찾아왔다. 당시 폴의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사회복지사의 질문에 폴이 어떻게 대답을 했을지, 그리고 그가 돌아간 후 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건 당일에 대해 폴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무언가 실수를 했는데 어머니는 폴에게 “아버지가 돌아오면 얘기해서 혼나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친구와 저녁 약속으로 집을 비운 아버지는 다음날 사업차 한국으로 출장을 떠나기로 돼 있었다. 늘 그랬듯이 아버지는 출장을 떠나기 전까지 심하게 혼낼 것이 분명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동생만 없으면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를 테니 또 맞지 않겠지.’ 아버지가 벽에 걸어둔 사냥총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15살 소년에게 무기징역

이 사건은 한인 언론뿐만 아니라 주류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재판이 열린 랜초쿠카몽가는 백인 보수층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주류 언론에서는 단란한 아시안 가정에서 발생한 보기 드문 엽기 사건으로 계속 보도했고, 어머니를 죽인 비정한 아들의 무기징역 판결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쩌면 이 역시 아시안을 향한 주류사회의 전형적인 편견과 선입관 때문이었을 수 있다.

가주 형사법은 정신 이상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는 형사범이 기소된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평결이 내려질 경우 범죄 발생 당시 피고인의 정신이 정상이었는지 여부도 배심원들이 함께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다.

나는 폴이 심한 폭력으로 그의 뇌와 심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전문가를 증언대에 세우고 각종 학술 보고서까지 첨부해 제출했지만, 재판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폴이 범행을 저질렀을 당시 15살에 불과한 미성년자였다는 사실도 외면했다. 청소년기 성장 호르몬이 심리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남학생의 뇌는 최소 23세가 될 때까지 성장하며 심한 폭력이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없앤다는 뇌 분석 연구 결과가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지만, 당시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했다.

배심원단은 평결 작업에 들어간 지 사흘 만에 2건의 2급 살인 혐의와 2건의 총기 사용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다만 폴이 범행을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급 살인 혐의는 무죄 평결을 내렸다.

만일 폴의 재판이 지금 진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지금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한인사회 사건들

한인사회에서 최연소 살인사건으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1999년 6월 12일 새벽 샌버나디노 카운티 업랜드시에서 발생했다.

업랜드경찰국 보고서에 따르면 폴 염(한국명 승철·당시 15세) 군은 사건 당일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염혜선·당시 38세)와 여동생 선엽(당시 9세)의 머리를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라이플총으로 차례로 쏴 살해하고 달아난 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라스베이거스의 리비에라 호텔 방에서 현지 경찰과 연방수사국(FBI)요원들에 체포됐다.

사건은 염군의 아버지가 인근 지역에 사는 친구와 식당에서 만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다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가 집안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염군이 발견된 호텔은 염군의 가정이 자주 놀러 가던 곳으로, 경찰은 호텔 방에서 잠자던 염군을 발견했고 주차장에서 염군이 운전한 차량도 찾았다. 염군이 범행에 사용한 총은 라스베이거스를 가는 길을 수색하던 중 발견했다고 경찰은 보고했다.

당시 경찰은 염군이 평소 학업 등에 대한 스트레스로 부모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염군의 재판은 샌버나디노카운티 형사법원 랜초쿠카몽가지법(담당 제라드 브라운 판사)에서 진행됐으며, 최종 선고 판결은 지난 2002년 3월 17일에 나왔다. 법원은 염군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2급 살인혐의(15년~무기징역)와 총기를 사용해 살인한 혐의(25년~무기징역)에 유죄판결을 내렸다.

기록에 따르면 염군은 만 18세까지 청소년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후 성인 교도소로 옮겨졌다. 염군은 최소 40년 복역을 마친 후에 가석방 청문회를 통해 석방될 수 있다. 염군의 가석방은 204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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