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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두레질의 추억

캘리포니아 가뭄이 심각하다고 한다. 가뭄,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오래 전, 어머니와 함께 두레로 물을 품어 올리던 일이다.

논농사는 못자리를 만드는 일로 시작되었다. 썩굴 골짜기에 우리 논 다섯 마지기가 있었다. 대부분의 산골짝 논처럼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이었다. 일곱 다랑이 논 맨 위쪽에 논배미들을 먹여 살리는 제법 큰 둠벙이 있었다.

맨 윗 다랑이에 못자리를 마련했다. 겨울 동안 논에 물을 담아 놓았기에 쟁기로 갈아엎고 못자리를 만들어 볍씨를 뿌렸다.

봄 가뭄이 시작되었다. 못자리에 물을 넣어주어야 했다. 매일 어머니와 함께 두레질로 물을 퍼 올렸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새끼줄 두 개를 양손으로 잡아 균형을 맞춰 물을 퍼 올리는 작업이었다. 두레에 담기는 물의 양은 작은 양동이 하나에 담기는 정도. 농사일을 처음 배우는 어머니와 중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모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을 품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모내기철이 왔어도 비가 오지 않았다. 물을 퍼 올려 모를 심어야 했다. 한 마지기 논에 모를 심으려면 얼추 6000~7000두레의 물이 필요했다. 장단을 맞춰가며 두레질을 했다. 몇 두레인가를 세어가는 의미도 있지만 그렇게 해야 힘이 덜 들었다. “마흔아홉에” “어이” “백에 반 튼” “허이” “쉰하나요” “그라제”….

해가 지면 달이 떴다. 두 모자가 물 품는 모습을 달빛이 비추었다. 열일곱 아들과 서른여섯 어미가 달빛 아래 허리를 굽혔다가 일어서면서 두 팔을 허공에 뻗치며 춤을 추었다. 달그림자가 한 번 춤을 출 때마다 ‘철퍼덕’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솨르르 솨르르 논바닥에 물 번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듣기 좋은 소리는 배고픈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와 마른 논바닥에 물 내려가는 소리라 했다. 목마른 벼들이 꿀떡꿀떡 물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은 퍼내는 만큼 줄어갔다. 물이 깊어갈수록 힘이 들기 마련이었다. 결국 밑바닥이 아스라이 보일 정도로 물이 줄었다. 그 깊은 곳까지 두레를 내려 물을 담은 다음, 팽팽하게 균형을 이뤄 젖 먹던 힘을 다해 한 두레 물을 퍼 올렸다. 두레를 따라 둠벙으로 끌려들어 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견뎌내야만 했다.

물 품는 일은 슬픔을 퍼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내 어린 가슴에 소리 없이 흐르는 서러움의 강물을 어머니와 함께 두레로 담아내는 일이었다. 눈물을 닦으며 슬픔을 말리며 서서히 여물어 가는 모양이었다.

쉴 참이면 어머니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의 눈 속에는 학교 갈 나이에 농사를 짓는 아들에 대한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녹아 있었다. 어머니의 눈길을 느끼면서도 나는 모른 척 딴청을 피우곤 했다.

반세기 전쯤, 호롱불을 켜고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도 ‘가뭄’ 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레로 물을 품던 일이 생각나고, 솨르르 솨르르 마른 논바닥에 물 스며드는 소리가 내 가슴을 적신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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