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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레트로 감성의 비디오 게임과 현대미술

이재이, ‘손으로 만든 현실’, 2021, 멀티채널 비디오 아트, MTA Art and Design 프로그램, 설치장소 뉴욕시 맨해튼 풀턴 센터 지하철 역사 쇼핑몰(8월까지 매시간 2분 상영). 사진 이재이 스튜디오.

이재이, ‘손으로 만든 현실’, 2021, 멀티채널 비디오 아트, MTA Art and Design 프로그램, 설치장소 뉴욕시 맨해튼 풀턴 센터 지하철 역사 쇼핑몰(8월까지 매시간 2분 상영). 사진 이재이 스튜디오.

개념 미술 작가 코리 아케인절(Cory Arcangel)의 ‘수퍼마리오 구름(Super Mario Clouds)’은 컴퓨터 해킹 작업이다. 1985년 미국에 처음 출시된 일본 닌텐도 회사의 수퍼마리오 게임기용 카트리지를 해킹해서 소리와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고 하늘의 구름만 남겼다. 원래 고전음악을 전공한 작가는 이런 해킹 작업을 만들기 전에 필요한 컴퓨터 언어를 습득하고 해킹할 기술을 연마한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악기의 연주법을 익혀야 하듯이 말이다. 작품을 만들던 2000년대에는 휴대전화와 LED 모니터로 상연되는 복잡하고 뛰어난 비디오 게임이 나타났지만 수퍼마리오 게임에서 구름만 남기기 위해 작가는 20년 전의 컴퓨터 언어를 배우고 목적한 바를 달성하였다. 이것은 테크놀로지의 우위를 인정하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전자기기 및 소프트웨어의 등장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개인의 의도대로 기계문명을 통제하려고 하는 시도를 잘 보여준다. 2014년 조나단 다한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는 작가 아케인절에게 물어서 수퍼마리오 게임기용 카트리지를 어떻게 편집하여 원하는 효과만을 추출하는지 정리하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웹사이트에서 공유하였다. 마치 요리책이나 기계장비의 설명서처럼 필요한 기기와 준비물이 잘 설명되어 있었다. 아케인절의 컴퓨터 해킹으로 창조된 구름은 손으로 만든 작품인가 아니면 단순한 기계 조작인가?

최근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 한인 이재이 작가는 맨해튼 월스트리트 근처 풀턴 센터 지하철역에서 ‘손으로 만든 현실(Handcrafted Reality)’이라는 제목의 공공미술 비디오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두 개의 대형 모니터에는 각각 검은색 배경과 초록색 배경의 컴퓨터 정지화면 같은 디자인이 떠오른다. 작품의 제목에서 보듯이 컴퓨터 그래픽 같은 이런 풍경도 결국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인간의 상상력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손으로 만든 현실’이라고 작품의 제작 의도를 밝혔다.

이재이 작가는 낡은 주택가 공동 목욕탕 등에 자주 등장하던 세라믹 타일을 붙인 나이아가라 폭포, 북극곰 등의 벽화 앞에서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 아트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기억과 추억,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같은 주제의 비디오 작품을 제작 중인데 비슷한 철학적 바탕의 작품이 ‘손으로 만든 현실’이다. 팬데믹 동안 많은 사람은 친밀함을 가상현실에서 유지하고자 갈망하였다. 2020년부터 2021년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화상회의와 가족 간의 화상통화를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친근하면서도 ‘현실’은 아닌 이런 모니터에 재생된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의 모습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실제 만남이 아닌 모니터에 비친 모습을 가슴에 혹은 기억에 담은 우리는 그것을 가상현실이라고 불러야 할까?

비디오 게임을 평범한 일상의 일부로 여기며 자랐던 이재이 작가 같은 X세대들에게는 테트리스 같은 인기 게임부터 닌텐도 수퍼마리오, 포켓몬 등의 등장인물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사촌들, 친지들보다 훨씬 더 친근하고 익숙한 존재들이다. 비록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에 나타났다가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만질 수 없는 신기루 같은 대상이지만 게임을 하면서 자란 이들은 각각 캐릭터의 정서적 특징까지 묘사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재이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파스텔 색깔의 귀여운 기하학적 물체들은 이러한 가상현실의 추억 속 캐릭터의 환유 같은 존재들이다. 누구의 기억 속에는 80년대 혹은 90년대 컴퓨터 정지 화면의 도안 같은 이미지들이 추억이 된 것이다. 의도적으로 작가는 검은색 배경의 모니터에 포켓몬 게임 캐릭터의 색깔과 등장인물들을 연상시키는 물체들을 재현하되 독창적으로 만들었고 초록색 배경의 모니터는 마치 푸른 초원 위를 뛰어다니는 곤충이나 동물을 연상시키는 구 면체 형태의 창조물로 가득 차 있다. 조물주, 말 그대로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사물과 생명체를 만든 주인이 신이었다. 하지만 지난 팬데믹 동안 가상현실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인간관계의 끈을 가까스로 붙들어왔던 우리는 이렇게 인터넷상으로 존재하는 네트워크상에서 관계의 네트워크를 스스로 창조한 셈이다. 어쩌면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격에 의존하고 기대하였던 전근대인들과 네트워크상의 인간관계를 개척하여 관계성을 유지한 호모 테크니쿠스라고 자칭하는 21세기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손으로 만든 현실’은 역설적으로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기계적 소프트웨어의 파생품 같은 게임 캐릭터에 애착과 향수, 추억을 느끼는 21세기 인류학적 보고서 같다. 원시시대 인간들이 돌덩이, 나무 등에서 소속감 내지는 조상의 혼을 느끼듯 우리 현대인들은 레트로 스타일의 기계 장치 및 가상의 캐릭터로부터 소속감과 노스탤지아, 고향에 돌아온 안도감을 느낀다. 팬데믹에 지친 뉴욕 지하철 이용객들도 의외로 이재이 작가의 ‘손으로 만든 현실’의 푸른 초원과 은하수 하늘을 보면서 위안을 느낄 것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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