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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준비되지 않은 이별

올해 봄은 내게 잔인한 시기였다. 이별은 늘 익숙하지 않지만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더 힘들다.

친 형제자매 같이 가까운 친구의 남편이 암수술 한 달 후 응급실로 실려 갔다. 수술 중 심폐소생술을 세 번이나 했지만 혼수상태가 됐다. 우리는 모두 충격에 빠졌다.

저녁에 전화벨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방금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 애간장을 끓이는 목소리였다. 응급실로 간 지 닷새만이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침대 위에 평온한 얼굴로 누워 계신 집사님. 왜 여기에 누워있단 말인가. 일어나 우리를 맞이해야지.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과 나는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많이도 말했지만 집사님은 대답이 없었다.

코로나로 가족 외엔 병문안을 할 수 없었지만 우리 부부는 마지막 작별을 했다. 보내기 싫은, 아니 보낼 수 없는 마음은 자욱한 안개를 헤맸다. 무엇인가 보이는 듯, 애초에 없는 듯 희미하고 멀었다.

말수 적은 남편에게 아우나 다름없던 집사님은 수술 후에도 계속 통증을 호소했다. 얼마나 아팠으면 매일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을까. 우리도 집사님이 평안한 마음을 누릴 수 있기를, 아프지 않길 간절히 매일 기도했다.

수술하기 전 집사님은 일주일에 두 번이나 아무 연락도 없이 우리 집에 왔다. 그것이 마지막 방문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들어오란 얘기도 못 했는데 그렇게 빨리 떠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집사님의 서재에는 ‘경천애인’이라고 쓴 액자가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을 진정 사랑하셨다. 누군가는 그를 그리워했고 그는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담소를 나누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1983년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교우로 만난 후 두 집 다 세 아이들이 학년이 같아 빨리 가까워졌다. 우리의 인연은 형제자매나 다름없었다. 함께 밴을 타고 떠났던 옐로스톤 여행은 아무것 아닌 것을 갖고도 한없이 웃었던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솔뱅으로 데스밸리로 샌타바버러로 빅베어로 팜스프링스로 샌디에이고로… 그 많은 여행길 위 추억을 어찌 잊을까. 결혼 기념 여행으로 갔던 독일에서 사다 준 에스프레소 커피잔 2개는 지금도 진열장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적이면서도 지적인 집사님은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두를 감싸는, 품이 넓은 분이셨다. 모두에게 정을 주고 추억을 남기고 가신 분. 가슴이 따뜻했던 그분은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좋아하던 벗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두고 떠났다.

이젠 차를 타고 가도 더 이상 우리 곁에 없겠지. 우리 전화도 더 이상 받지 않겠지.번개 미팅을 하자고 갑자기 걸려오던 전화도 없겠지. 모든 생각이 슬픔으로 변해 가슴을 누른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우린 아직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 길을 영영 혼자 떠났다. 가족 모두 주님이 이끌어 주시는 힘으로, 용기를 잃지 말고 믿음으로 견디며 살아가시길 간구한다.

오늘은 친구 같은 언니 숙에게 봉안당에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안개꽃이 좋을까? 인간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하셨으니.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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