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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아래서] 무엇이 우리를 지킨 것인가

불안과 두려움이었던 팬데믹은 어느덧 익숙과 편리라는 단어 또한 우리에게 남기는 중이다. 시끌벅적한 식당이 아닌 포장된 음식에 익숙해졌고 항상 전화기만 들여다보던 아이들에게 한소리 하던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동영상 소비자들이 되었다. '우리' 대신 '혼자'가 편리해지다 보니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귀찮아지는 묘한 느낌에 놀라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가 많아지던 이 시대는 코비드로 인해 가속이 붙었다. 성숙한 관계보다는 편리한 관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치를 보며 뒷걸음을 치는 듯한 팬데믹으로 회사나 가게의 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슬며시 열려 가는 중이다. '우리'는 다시 '우리'를 찾으려 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다시 시동을 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멈추었던 사역들이 다시 활기를 찾으려는 소리 예배로 모여서 반가운 얼굴로 안부를 묻는 '달콤한' 소리도 들린다. 모두 마치 신앙의 시동 소리같이 들린다. 그렇게 우리는 회복을 소망한다.

그런데 누구나 한 번쯤은 꺼놓은 줄 알고 시동을 걸다가 끼익 하는 엔진 소음에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멈춘 적이 없는 차에 시동을 건 것이다. 과연 우리는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일까.

멈춘 줄 알았던 메마른 사막에서 두려움과 불안으로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던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멈추신 적이 없었다. 루터의 고백처럼 말씀은 발이 있어서 나를 쫓아다녔고 손이 있어서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멈춘 줄 알았던 그 시간에도 말씀은 쉬지 않고 우리를 따랐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푸른 초장은 사망의 골짜기와 다를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라도 심지어 원수 앞에서도 우리 인생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랐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걷히기에 물가에 다다른 것이 아니다. 편리에 익숙해졌기에 푸른 초장에 누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집에 살았다. 멈춘 줄 알고 시동이 꺼진 줄 아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멈춘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시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손을 놓자 무엇이 우리를 지킨 것인지 이제 고백하게 되었다. 내 힘으로 만들었던 기독교를 우리 스스로 부인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넘치는 사람들이다. 내 것을 또 꺼내들어 그 더러운 걸레로 식탁을 닦아서는 안 된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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