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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인물탐구- 사마리아 여자

예닮장로교회 윤우식 담임목사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소개합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력 중에서 자랑하고, 내세우고 싶은 것을 언급하면서 자신을 소개할 겁니다. 특히 우리가 자신을 소개할 때에 내세우는 것이 ‘출신 학교’입니다. 그런데 나를 소개할 때 내세우고 싶은 것이 있다며 나를 소개할 때 내세우고 싶지 않은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은 굳이 나를 소개할 때에는 말하지 않고 숨기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자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사마리아 여자라고 하면 ‘음란한 여자’, ‘난잡한 여자’등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 여자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 북과 남으로 나누어집니다.
남쪽은 우리가 흔히 남유다로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북쪽은 북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후에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민족들은 다른 이방민족과 섞여서 살게 되고, 혼혈민족이 되어 버립니다. 이들이 사마리아지역에 모여 살게 되면서 이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소위 이스라엘의 순수혈통, 왕족혈통을 자부하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종교를 더럽힌 개와 같은 민족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이방인들과 섞여서 혼혈이 되었다는 이유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혼혈이 되었다는 것이 왜 신앙을 더럽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사실 예수님 당시에 믿음을 더럽힌 사람이라고 책망 받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본족 유대인이었고, 그 중에서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차별은 다른 사람과는 나는 다르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착각하며, 교만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 아주 난잡하고, 더러운 사람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 간다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런 구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사마리아지역을 통과하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수가라 하는 동네를 지나십니다. 여기에서 우물에 물을 긷기 위해서 나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십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이 요청에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요한복음
4:9. 여기에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유대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는데, 어떻게 당신은 사마리아인, 그 중에서도 여자인 나에게 말을 겁니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으로 보는 것은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보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눈에도 예수님은 그냥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시야에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한복음
4:19. 예수님을 단순하게 유대인으로 보던 것에서 이제는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내가 보니’라는 표현 중에 ‘보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데오로(θεωρω)’입니다. 이것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하게 보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 그는 예수님을 자세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예수님이 ‘선지자’로 보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 하심이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보인 겁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좀 더 이어집니다. 그러자 여인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한복음 4:28,29.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사는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오셨다’라고 전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인은 마음 속에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에서 자신의 마음 속에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반응을 한것입니다. 당시에 수 많은 유대인들, 소위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유대인, 병 좀 고치는 사람, 선지자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결국 그들은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러나 무시 받고, 천대 받는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많이 배웠습니까? 좀 똑똑합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록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서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머리로가 아니라 믿음의 온전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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