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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외로움은 병

“아들과 며느리가 맨해튼에 가는 김에 깻잎 김치 가져다줄게.”

“됐어. 내버려 둬.”

“도어맨에게 맡겨놓을게. 맛있게 먹어.”

“됐다니까.”



“자기도 꼴리는 대로 하는데 나도 내 맘대로 할 거야.”

지난 초겨울, 바이러스로 집콕하는 나와 친구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쌀 한 포대기, 대추와 밤과 잣을 넣은 찹쌀밥, 깻잎 김치, 묵, 명란젓, 콩나물국, 감을 늘어놓으니 한 상 가득하다. 찹쌀밥에 깻잎 김치를 얹어서 퍼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질하는 손이 떨리며 눈물이 고였다.

아주 오래전, 롱아일랜드에서의 유학 시절, 외로움은 병이었다. 무인도에 떨어진 듯 외로움이 벅차서 다른 어떤 생각이 머리를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누군가가 기차를 타고 어찌어찌 가면 나처럼 생긴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플러싱이다. 메인 스트릿과 만나는 루즈벨트애비뉴에 서서 동양인에게 손짓하며 웃었다. 사람들은 배시시 웃고 있는 나의 눈길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플러싱이 있어 한나절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지금은 사라진 구화식품에 들러 쌀과 무말랭이무침을 샀다. 기숙사에 돌아와 뜨거운 밥에 양념 무말랭이를 얹어 먹다가 갑자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핑~ 하얀 쌀밥이 눈물에 젖었다.

친구가 보내온 음식을 먹으며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고마워. 너무 맛있어서 손이 다 떨리네.”

“깻잎무침이 세 종류인데 어느 것이 제일 맛있어?”

세 종류? 이상하다. 한 종류인데 세 종류라니?

“다 맛있어.”

보내온 반찬들을 다시 확인해도 깻잎 김치는 한 병뿐이다.

“아이고머니나! 글쎄, 깻잎 김치통을 넣는다고 해 놓고는 깜빡 잊었네. 어떡하지?”

“어떡하긴, 그만 줘. 자기 며느리가 전해줘서 오해가 생길까 봐 무조건 다 맛있다고 했어.”

주말에 오는 남편을 위해 감만 빼고 음식을 냉장고에 고이 모셔놨다. 친구 집 감나무에서 딴 단감 그리고 친구의 옆집에서 땄다는 홍시를 식탁에 올려놨다. 홍시를 먹을까? 단감을 먼저 먹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주홍색 감을 한참 보며 망설였다. 어릴 적에 고르기 힘들면 했던 손가락질을 했다.

“어느 것을 먹을까 알아맞혀 보세요.”

친구 집 감나무에서 딴 단감에 손가락이 멈췄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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